[배병우 칼럼] ‘포템킨 마을’과 문 대통령

국민일보

[배병우 칼럼] ‘포템킨 마을’과 문 대통령

입력 2020-12-23 04:03

대통령의 동탄 임대주택 행사
제정 러시아 시대의 유명한
'가짜 마을' 연상시켜

연출된 현실을 바탕으로
어떻게 바른 정책 나오겠나

경제 등 국정 전반에 겉과 속 다른 포템킨 현상 만연해

1787년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가 드네프르강에서 배를 타고 크림반도를 시찰했다. 크림반도는 4년 전 오토만제국에서 빼앗은 땅이었다. 총독이자 여제의 연인이었던 그리고리 포템킨 공작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곳을 번영하는 곳으로 보이도록 강변에 가짜 마을을 세웠다. 그는 여제가 지나간 뒤에는 즉시 세트를 철거해 다음 방문지로 옮겼다. 이 일화에서 유래된 말이 ‘포템킨 마을(Potemkin village)’이다. 초라한 현실을 숨기기 위해 가공의 상황을 만들어 보이는 것을 가리킨다.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의 경기 화성시 동탄의 공공임대주택 방문 행사는 포템킨 마을과 참 많이 닮았다. 문 대통령이 둘러본 임대주택은 꽤 고급스러워 보였다. 최신식 TV와 침대, 식탁과 소파, 조명과 커피 머신 등이 눈길을 끌었다. 벽면엔 세련된 그림도 걸렸다. 알고 보니 대통령 방문 직전 빈집에 인테리어 공사를 황급히 한 것이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임대주택 두 채를 꾸미는 인테리어 비용으로 4290만원을 썼다.

‘큰 손님을 맞기 위해 치장 좀 한 것 가지고…’ 할 게 아니다. 대통령이 이 단지를 방문한 목적을 들여다봐야 한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정부가 24번째 대책으로 들고나온 게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다. 대통령은 공공임대주택이 ‘이렇게 좋다’는 걸 보여주려 이 단지를 방문했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다르다는 게 문제다. 대통령이 방문한 동탄 임대주택은 LH가 2017년 임대주택 100만호 달성을 기념해 착공한 단지다. 공들여 지은 대표 단지다. 그렇지만 전체의 25%가 빈집이다. 올해 소득 기준을 중위소득 100%에서 130%로 완화해 추가 모집 공고를 두 차례나 냈는데도 그렇다.

동행한 변창흠 LH 사장(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말대로 보증금이 인근 민간 아파트보다 싸다. 그런데도 시장에서 외면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교통여건이나 학군이 안 좋거나 소비자가 원하는 평형을 갖추지 못하고 작은 평수만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또 싼 가격을 고려해도 아파트 품질이 나쁘기 때문일 수 있다. 실제 이 아파트에는 지난 8월 입주 이후 누수와 벽면 곰팡이 등 하자 신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게 한국 공공임대주택의 현실이다. 전세난이 통제 불능이라고 할 정도가 됐는데도 서울의 4900가구를 포함해 수도권에서 공공임대주택은 1만6000가구가 비어 있다. 최대 원인은 실수요자들의 선호나 필요가 아니라 실적을 채우려는 공급자 편의 위주로 주택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방문 행사는 이런 현실을 숨기고 임대주택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려고 했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포템킨 마을보다 동탄 임대주택 쇼는 더 나쁘다. 포템킨 공작이 아부 목적으로 전제군주 한 사람을 속이려 했다면 정부와 LH는 전 국민을 속이려 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행사는 홍보가 아니라 여론 조작이다. 국민을 속이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만들어낸 ‘기획된 거짓’이라는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이 옳다. 이런 가짜 현실에 기반해 문 대통령은 “중산층에게도 공공임대주택 혜택을 늘려가겠다”고 했다. 국민들이 질 좋은 임대주택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일부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복지정책 수단이 아니라 전면적인 주택공급 수단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사용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번 행사의 연출자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만 욕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이번 정부의 국정 곳곳에 포템킨 마을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 경제는 2% 성장했다. 정부는 역경 속에 선방했다며 자화자찬했다. 그렇지만 미국이 2.3% 성장하는 등 실제 세계 경제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난해 성장률 2%의 80%(1.6% 포인트)가 정부 재정투입으로 이뤄졌다. 민간부문의 성장기여도는 0.4%에 불과했다. 또 지난해 소득 최하위 20% 계층의 연간 수입 절반가량이 정부 보조금이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예상치가 -1.1%로 주요국 중 가장 양호하다고 자랑하지만, 이는 경제 운용을 잘해서가 아니다. 거리두기 등 방역 노력에 전적으로 협조한 국민에게 공을 돌려야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경제가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딴판이라며 ‘포템킨 경제(Potemkin economy)’라고 했다. 포템킨 경제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논설위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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