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저마다의 귀인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저마다의 귀인

배승민 의사·교수

입력 2021-01-01 04:05

많은 사람들이 연말연시에는 토정비결을 보는 걸로 새해를 맞이하던데, 요즘은 뭐든 온라인화가 되어선지 그런 풍경이 드물어진 듯하다. 게다가 나의 경우 그날이 그날 같은 병원 일정과, 연휴에는 당직이나 응급실 근무로 더 바쁘기 일쑤라 그다지 토정비결에 신경써본 적 없건만 오늘 따라 무심코 본 기사의 한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귀인’. 반가운 지인을 만나 ‘오늘은 서쪽에서 귀인을 본다더니’ 식의 농담으로는 간혹 쓰지만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고, 요즘 세대는 더 안 쓰는 단어. 그런데 시국이 엄중해 그런지 오히려 그 예스러운 단어가 눈길을 끌었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마치 돌파구 없는 파국으로 달려가야만 하는 양 거칠게 날 서 있는 시기. 이럴 때일수록 삶의 균형을 잘 잡아야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할 텐데.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정한 귀인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일 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김에 작년 한 해 동안 나에게 귀인이 되어준 사람이 누구였을까 곰곰 생각해본다. 아무런 준비 없이 학회의 직책을 맡아 아등바등했던 지난 일 년. 부족함과 실수들을 너그럽게 덮으며, 이런 시기에도 큰 사고가 없도록 적재적소에서 도와준 분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밖에서 새는 바가지, 안이라고 멀쩡할 리 없듯 외부 일에 쫓기느라 가정에서는 구멍이 숭덩숭덩 나던 부분을 생색 한 번 없이 메워 준 가족들 역시 내게 소중한 귀인이다.

그렇다면 어디 보자. 반대로 내가 남에게 귀인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나름 있겠지 싶어 꼽아보려 애써봐도 도통 떠오르는 일이 없다. 그렇다고 새해 첫날부터 실망은 금물. 앞으로라도 노력하면 되지! 뻔뻔히 마음 먹어본다. 사실 이런 게 새해 결심이 아니겠는가. 자만하다 귀인은커녕 민폐나 되지 말자는 내면의 잔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듯하지만, 이번 새해 결심은 작심삼일만 넘겨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다독여 본다.

배승민 의사·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