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티끌, 주식·부동산 대박… “이러니 탐할 수밖에” [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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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은 티끌, 주식·부동산 대박… “이러니 탐할 수밖에” [이슈&탐사]

[자본소득, 생존의 뉴 노멀이 되다] ① 근로소득, 의문의 1패 - “월급의 가치가 낮아졌다”

입력 2021-01-01 00:04
근로소득으로 재산을 모으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자본소득을 위한 투자에 뛰어드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사진은 노트북으로 주식 차트를 들여다보는 청년과 부동산, 금, 비트코인 이미지를 각각 촬영한 뒤 합성한 모습. 윤성호 기자

이대규(24)씨는 마이스터고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기계설계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1년 동안 버는 돈은 약 2800만원. 2019년 결혼을 하고 딸을 얻은 이씨는 혼자 버는 월급으로 전세대출 이자와 세 식구 생활비를 감당하기 버겁다.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해보려고 일감을 연결해주는 업체에 가입했다가 결국 주말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 토·일요일 12시간씩 일하고 있다.

평일과 주말 모두 일해 버는 돈은 월 300만원 정도. 매달 통장에 수입이 찍히지만 미래는 아득하다. 그는 “대출도 받은 상태인데 월급을 모으고 또 모아봤자 10년을 모아도 1억원도 안 되는 것 아닌가”라며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여봤는데 (회사에서) 20~30년 일해도 집 한 채 살 수 없고 의식주만 겨우 해결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지난 5월부터 ‘가만히 있어도 돈을 버는 일’을 위해 24시간을 쪼개 쓰고 있다. 그는 월 3만원 정도의 배당금을 받을 수 있는 미국 주식에 투자했다.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면서 월 3만~4만원의 광고 수익을 받고 있다. 쿠팡 구매 링크를 공유해 수익을 나눠 갖는 ‘쿠팡파트너스’를 하고 있다. 한 번 등록해두면 수익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전자책 출간도 준비 중이다.

월급 모아선 “티끌 모아 티끌”

근대 사회 이전부터 평범한 사람이 부를 쌓는 방법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생산수단’이 없는 사람들은 노동의 대가로 받은 임금을 모아 자식을 키우고 집을 샀다. 자녀 결혼 자금과 은퇴 이후 노후 자금까지, 재산의 원천은 순전히 근로소득이었다. 21세기가 2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월급을 모아서는 미래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2030세대를 중심으로 근로소득만 믿어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투자자를 위한 주식·재테크 관련 서적들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진열돼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20년 종합 베스트셀러 10권 가운데 경제·경영과 자기계발 분야 서적이 5권으로 절반을 차지했다. 윤성호 기자

직장인 박모(33)씨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근면성실’과 ‘저축’을 중요시하는 삶을 살았다. 스물세 살에 대학을 졸업해 한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 본사에 취업했다. 10년간 성실히 일해 직장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씨는 1년여 전 한 친구로부터 부동산 투자를 권유받았다. 유튜브를 통해 ‘부동산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을 찾아가 1시간에 30만원을 주고 ‘족집게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는 2020년 초 전문가가 ‘유망 지역’이라고 찍어준 경기도의 아파트를 샀다. 9년간 모은 1억5000만원에 동생이 월급을 모아 마련한 돈까지 더해 전세입자를 끼고 매매 계약을 했다. 박씨는 계약 전까지 해당 아파트가 있는 지역을 가본 적이 없었다.

현재 그 아파트는 박씨가 샀을 때보다 정확히 2억2000만원이 올랐다. 박씨는 안도감과 함께 허무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새벽 7시에 출근하는 조근을 자처했고 주말 야근도 일상이었다. 추가 근무 수당도 받으면서 월급을 착실히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1년 만에 번 돈이 더 크다고 생각하니까 허무하다”고 말했다.

2030세대는 근로소득의 가치가 한없이 작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기성세대보다 더 빨리 재테크에 뛰어들고 있다. 대학생 김모(25)씨는 입대 전부터 재테크 계획을 세웠다. 군 복무 기간 ‘군 적금’을 통해 돈을 모아 제대 후 종잣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김씨는 병사 월급의 절반인 20만원을 연 5% 금리를 주는 군 적금에 가입했다. 지난 1월 제대한 뒤 적금으로 모은 돈을 주식에 넣었다. 김씨는 “군 복무 기간 받은 적금 이자는 20만원이 채 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하루 이틀만 투자하면 벌 수 있는 돈이 됐다고 느낀다”며 “어른들은 ‘월급을 차곡차곡 모으라’고 하는데 직장인이 월급 200만~300만원 받아서 돈 모아도 집을 살 수 없지 않나. 앞으로도 종잣돈이 모이면 ‘20년 후에도 전망 좋은 회사’를 찾아 적금처럼 주식을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재테크가 필수처럼 여겨지면서 돈을 추구하고 부를 축적하는 삶을 동경하는 경향도 짙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명예 없이 돈만 번 사람들에게 ‘졸부’라는 부정적 인식을 덧씌우는 경우가 많았다. 부를 과시하는 일도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지고 있는 자산이 얼마인지, 사는 집이 전세 혹은 본인 소유인지, 주식 투자는 얼마나 하는지 묻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투자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은 노력의 대가이자 곧 개인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요즘에는 부자를 존경하고 정당한 방식으로 번다면 ‘돈은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지난 7월 한 온라인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재산세 고지서’를 인증하는 사진이 속속 게재됐다. 재산세는 말 그대로 부동산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에게 보내지는 세금 명세서다. 고지서를 발송한 구는 부동산 소재지를 의미한다. 게재된 고지서의 상당수는 ‘강남 3구’에서 발송된 것이었다. 한 직장인은 “세금을 납부할 부동산이 많아서 (고지서 여러 개가) 큰 봉투에 담겨 발송됐다”는 글을 올렸다. 댓글에 ‘건물주인가’ ‘부럽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를 향한 비난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주식, 부동산 투자가 불로소득인지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있다. 국민일보와 비영리 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젊은 세대일수록 주식, 부동산 투자 수익을 ‘노력에 의한 대가’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직장인 고미선(33)씨는 “투자에 성공하려면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한다. 돈을 모으고 굴리는 노력을 한 것 자체로 돈을 벌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돈에 대한 열망이 거셀수록 다른 한편에선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국민일보·공공의창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2.7%가 ‘최근 1년간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박탈감을 느껴봤다’고 말했다. ‘벼락 거지’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벼락 거지는 근로소득은 제자리인 반면 부동산 등 실물자산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자산이 없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식 투자도 하지 않고 집도 사지 않은 채 월급만 모았는데 ‘나만 거지가 됐다’는 푸념이다.

근로소득이 가치를 잃은 이유

‘근로소득의 패배와 자본소득의 승리’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속성 탓일 수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자산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커지는 게 자본주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이러한 현상이 소득불평등 심화를 불러온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는 현재 자산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뛰어넘는 변곡점을 지나고 있을 수 있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자본소득을 동경하게 된 현실적인 이유는 주택 가격의 급등이다. 최근 10여년간, 특히 문재인정부 들어 아파트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근로소득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일확천금의 기회가 생겨나다 보니 점점 비근로소득 중심으로 가도록 사회가 만들고 있다”며 “자연스럽게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면 집을 사고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사라져버렸다”고 진단했다.

근로소득으로 ‘내 집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건 여러 지표로 확인된다. 지난달 20일(12월 20일)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소득 상위 40~60%인 가구가 서울에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약 15년7개월 소득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돈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KB부동산이 2019년 KB국민은행에서 27~35세 신혼부부 주택대출 6만7703건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이 구입한 서울 지역의 주택 가격은 평균 5억8000만원이었다. 이 가운데 자기자금은 3억8000만원, 대출은 2억원가량이었다. 같은 조건의 전년도 자료(대출 건수 5만3978건)에서는 서울 주택 매매가가 평균 3억8000만원이었다. 자기자금은 2억3000만원, 대출은 1억5000만원이었는데 불과 1년 만에 2030세대들이 집을 마련하는데 필요한 돈이 2억원가량 증가했다.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의 스마트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주가 그래프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은 다중촬영. 윤성호 기자

한국의 20, 30대가 자본소득을 더 추종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근로소득 자체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어서다. 금액이 적더라도 꾸준히 근로소득을 안겨줄 수 있는 일자리가 점점 줄고 있다. 아예 일자리에 진입하는 일 자체가 어려워졌다. 2020년 11월 기준 국내 실업률은 3.4%를 기록했는데 15세 이상 29세 이하 청년 실업률은 8.1%다. 30대 취업자도 2019년 같은 기간에 비해 19만4000명 감소했다. 아르바이트 등 단시간 노동을 하면서 정기적인 소득을 내지 못하는 ‘불완전 취업자’까지 포함하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취업해 노동시장에 진입한 20, 30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근로소득을 모아서는 은퇴 이후의 삶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고령화에 따라 기대수명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늘었지만 노후 보장 수단은 턱없이 부족하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인데 이마저도 40년을 가입해 꾸준히 납부했을 경우다. 직장인의 평균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25년임을 감안하면 소득대체율은 30%대로 떨어진다.

1993년 삼성생명은 자녀 2명을 포함해 4인 가구를 꾸리는 35세 가장에게 필요한 평생 자금 규모는 5억5000만원이라고 봤다. 노후생활비를 가정할 때 남성의 경우 기대수명을 67세로 봤다. 하지만 2019년 기준 기대수명은 80.3년으로 크게 늘었다. 노후 자금을 마련해두지 않으면 은퇴 이후에도 20년가량 계속해서 노동을 통해 수입을 발생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젊은 세대들이 근로소득보다 큰 수익을 좇는 투자에 열광하는 분위기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 취업난, 노동시장에서의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라는 근본적인 원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투자 열풍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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