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싱어게인 가수 30호

국민일보

[제주에 산다] 싱어게인 가수 30호

박두호 전 언론인

입력 2021-01-09 04:04

방에서 뉴스를 검색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아내가 불렀다. “이 가수 노래 들어봐요.” ‘싱어게인-무명가수전’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가수 63호와 30호가 겨루는 중이다. 30호 공연이 독특했다. 감히 오디션에서 보여주기 어려운 선택을 해 관심이 갔다. 그날 나는 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효력 정지를 결정한 뒤 나오는 후속 기사를 이리저리 검색하고 있었다. 법원 결정이 24일 밤 10시 넘은 시각이었으니 그때는 밤 12시쯤 됐을 듯싶다. 채널은 기억이 없고 나중에 알고 보니 재방송이었다.

30호는 인디밴드 싱어로 경험을 오래 해서 그런지 무대에서 여유가 있었다. 선곡은 이효리의 ‘치티 치티 뱅뱅(Chitty Chitty Bang Bang)’이었다. 앞선 1차, 2차 경연과 달리 기타를 들지 않았다. 음악의 메시지는 남의 곡이니까 말할 게 없고 노래는 높낮이, 강약을 능숙하게 발휘하며 관중을 몰입시켰다. 퍼포먼스는 리듬을 타는 작은 몸짓부터 절망의 어슬렁거림까지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무대를 장악했다. 그렇고 그런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도전적인 무대였다. 개성과 매력을 갖춘 아티스트로 보였다. 예술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주관적이다. 지금의 나도 그렇다.

심사위원석을 그들 말대로 휘저어 놨다. “기타를 메고 나왔으면 덜 어색했을 것” “기타가 있었으면 뻔했을 수 있다” “몸을 쓰는 것이 대형무대 가능성을 보여주는 스케일 큰 뮤지션” “족보가 어디 있는 음악인가 모르겠다” “대중음악 속성은 익숙한 걸 좋아하는 데 낯설다” “칭찬하고 싶은 건 심사위원 8명에게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대기실에 있던 다른 경쟁자가 “30년 전 서태지 처음 나왔을 때 딱 저런 모습이었어. 충격에 휩싸이고 악평받았거든”이라는 게 들렸다.

윤형주가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를 부르고 있을 때 한대수가 자유에 목마르다며 ‘물 좀 주소’를 외쳤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Can’t Help Falling in Love)’가 미국 뉴욕 거리의 스피커를 점령하고 있을 때 밥 딜런은 얼마나 많은 포탄이 날아다닌 뒤에야 평화가 오겠냐며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을 던졌다. 그때 쫓아가서 족보와 장르가 뭐냐고 물어야 했을까. 미국 가수 돈 맥클린은 ‘빈센트(Vincent)’에서 당대에 자신의 그림을 알아봐 주지 않는 데 괴로워했던 고흐에게 “그들은 당신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아직도 듣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라고 절망을 노래한다.

30호 가수는 “공식대로 음악이 아니라 나의 색깔을 담아서 새로운 무대를 꾸미고 싶다. 그래서 설렌다”고 했다. 새로운 것이 설렌단다. 30호의 노래와 심사위원들의 평을 듣자니 그동안 검색하고 있던 뉴스들과 오버랩됐다. 우리 사회가 새로운 도전을 열린 눈으로 볼 준비가 돼 있나. 내 편, 네 편의 진영논리를 벗어나 보라는 말은 절대 듣지도, 들으려 하지도 않을 건가. 제주에서도 두 눈 뜨고 볼 건 다 보고 산다.

박두호 전 언론인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