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석 칼럼] 사과와 용서

국민일보

[오종석 칼럼] 사과와 용서

입력 2021-01-06 04:01

전직 대통령의 사면 논란 부상… 진솔한 사과는 감동을 주고 상황 반전의 계기가 되기도
문재인 대통령은 ‘추·윤 갈등’ 일단락,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보수 정당 이미지 쇄신에 기여
李·朴 전 대통령과 측근들은 법원 판단 겸허하게 수용하고 국민에게 이해 구하는 게 도리

새해 벽두부터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논란이 핫이슈로 떠오르면서 ‘사과’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꺼낸 사면론에 대해 민주당은 ‘국민 공감대와 당사자 반성’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사실상 사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4일 KBS 뉴스9 인터뷰에서 “국민의 아픔을 이해하는 지도자로서 사과 같은 것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전직 대통령 측은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들은 횡령과 뇌물수수, 국정농단 등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억울하고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막무가내로 정치적 보복이라고만 강변한다. 따라서 전혀 사과할 이유도 없고 사과할 마음도 없다는 식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사과가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쉽지 않은 것임은 분명하다. 특히 정치인은 좀처럼 사과하지 않으려 한다. 사과는 잘못을 인정한다는 전제로 또 다른 공격의 빌미가 된다는 판단에서다. 야권이 무슨 일만 터지면 해당 장관 등 책임자, 더 나아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진솔한 사과는 때로 감동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상황을 반전시키기도 한다. 물론 정치적 목적만을 위한 형식적 사과는 오히려 역풍을 맞기도 하지만, 적시에 사과하지 않아 상황을 훨씬 악화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 상황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법원에서 윤 총장 직무복귀 결정이 내려지자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1년 가까이 끌었던 추-윤 갈등은 이로써 사실상 일단락됐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해 8월 보수정당 대표 최초로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게 사죄했다. 이는 그동안 보수 정당 일각에서 5·18을 부정하고 훼손했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지난달에는 당내 일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죄를 저질렀다”며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상황에 대해서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면 분위기는 사실상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사면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안 했다” “기억나지 않는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전혀 사과하지도 않는다. 후안무치한 그의 이런 행동은 이번 사면 정국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의 표명을 했던 추 장관은 아들의 군 휴가 의혹이나 서울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태에 대해 제때 사과하지 않아 막판까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좀 더 일찍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아 상황은 악화했고, 자신에 대한 신뢰도 추락했다. 윤 총장은 ‘판사사찰 의혹’ 문건 작성, 제 식구 감싸기식 수사, 대통령에 대한 항명에 대해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검사 술접대 의혹’과 관련해서도 지난해 국정감사 때 결과가 나오면 사과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수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유감 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검찰에 대한 불신과 함께 검찰 개혁의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이유도 된다.

마가렛 리 런벡은 ‘사과는 사랑스러운 향기다. 사과는 아주 어색한 순간을 우아한 선물로 바꾼다’고 했다. 진정한 사과는 화해와 용서로 이어진다. 사상 유례없는 코로나19 사태에 온 국민은 지치고 힘든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서로 협력하고 함께해 이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가야 할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잘못은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또 이를 감싸고 용서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수감 중인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범죄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국민 통합의 의미에서 사면은 충분히 검토해볼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국민이 공감하지 않으면 아무리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 해도 쉽지 않다. 두 전직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국민에 이해를 구하는 게 옳다. 설사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국가 최고지도자를 지냈던 분들인 만큼 적어도 대한민국 법원의 최종 판단은 수용하고 국민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다. 측근이라는 사람들도 더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도 용서하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오종석 논설위원 js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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