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정인이에게

국민일보

[여의춘추] 정인이에게

한승주 논설위원

입력 2021-01-08 04:07

정인아, 네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본다. 정인, 참 따뜻하고 예쁜 이름이구나. 친엄마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너를 입양기관에 맡겼을 때 온 이름이라고 하더구나. 그렇게 너를 세상에 낳아준 이는 네가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며 이름을 붙여주었겠지. 친엄마는 너의 소식을 들은 후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위탁모 가정에서 넌 행복해 보였어. 뽀얀 피부에 통통한 볼살 때문에 ‘복숭아’라 불렸지. 활달하고 밝은 모습이었어. 계속 그렇게 웃으면서 컸어야 했는데 바로 입양 절차가 시작됐어.

미국 유학파에 번역가인 양엄마는 입양이 오랜 꿈이라고 말했다지. 입양기관과 법원은 당시 양엄마가 정신과 치료 병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입양을 허가했지. 몇 차례 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것은 최근에야 밝혀졌어. 만약 네가 미국으로 입양이 됐다면 어땠을까. 미국은 입양 후 1년 동안 법원에서 모니터링 기간을 가진 후에야 자녀로 등록할 수 있다고 해. 그만큼 입양 사전심사가 엄격하다는 거지. 양부모는 너를 처음 본 날 바로 입양을 결정했어. 입양기관이 좀 더 꼼꼼하게 양부모의 병력 등을 살펴보고 객관적인 자격 검증을 했다면 이런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까.

입양 후 너는 눈에 띄게 수척해졌어. 뽀얀 피부는 검게 변했고, 표정은 어두워졌어. 양엄마는 너를 데려간 지 한 달 뒤부터 때리고 학대했다지. 배와 허벅지 안쪽에 멍 자국을 본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단다. 입양기관에서 가정방문을 왔지만 너를 그 집에서 바로 빼오지 못한 게 가슴 아프구나. 얼마 후 쇄골 주변에 실금이 생겨 2주간 깁스를 했지만 어린이집에서 다친 것이라는 양아빠의 해명에 경찰은 그냥 넘어가버렸지. 양엄마가 너를 자동차에 30분 넘게 방치했을 때도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지만 소용이 없었어. 그리고 한참 만에 어린이집에 보내졌을 때 그곳에서 양엄마 모르게 너를 병원에 데려갔어. 혼자 걷지도 못할 정도로 영양 상태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야. 너를 진찰한 소아과 의사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단다. 멍이 옛날부터 자주 있었던 것 같으니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아동학대 여부를 조사해 달라고. 그때라도 너를 양부모로부터 분리해야 했는데 이번에도 경찰은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려버렸지. 세 번이나 용기 있는 신고가 이어졌지만 너를 끝내 구하진 못했어. 말 못 하는 너 대신 양부모의 말만 일방적으로 믿었기 때문이지. 경찰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일까. 3건의 신고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배정돼 같은 아이의 사건인지 몰랐다는 변명이 황당하기만 하구나. 경찰청장이 고개를 숙이고 경찰서장이 물러났지만 이제 와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경찰의 무능은 정말 용서할 수가 없단다. 결국 입양기관, 경찰, 아동보호기관 등 너를 최우선적으로 지켜줘야 할 곳에서 너를 구하지 못했구나.

네가 세상을 떠나던 날, 응급실에서 너를 본 의사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고 분노했지. 천사처럼 예쁜 아이가 온몸을 얻어맞아 퍼렇게 된 모습이었으니까. 지속적인 폭력과 학대에 시달렸다는 증거였어. 뱃속은 피로 가득 차 있었고, 직접 사인은 복부 췌장 절단이라고 해. 말만 들어도 끔찍하구나. 얼마나 심한 충격이 가해졌을지, 너는 또 얼마나 아팠을지. 꽃으로도 때리면 안 되는 소중한 생명, 아무 방어력도 없는 너에게 부모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가혹한 짓을 했다니 참을 수가 없구나.

네가 태어난 지 492일 만에 하늘의 별이 된 후 남아 있는 많은 어른들은 비통함에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네가 그렇게 스러지는 동안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이제는 좀 달라졌으면 좋겠구나. 왜 소중한 목숨을 잃은 후에야 죽은 아이의 이름을 딴 법안이 올라오는 건지. 아동학대 관련 법안들이 겨우 통과되더라도 왜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건지.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은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법을 만들고 제도를 정비하는 일일 거야. 이제 그만 좀 싸우고, 할 일 좀 했으면 좋겠다. 우리 곁에는 미처 알지 못하는 정인이 같은 아이들이 많이 있을 거야. 이제는 더 이상 아이들을 잃고 싶지 않아. 하늘에서 변해가는 세상을 지켜봐 줘. 너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른들이 잘할게. 정인아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