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 뿌리 내린 교회, 힘겨운 배우들과 동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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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뿌리 내린 교회, 힘겨운 배우들과 동행하다

공연 연습 공간으로 개방한 아가페드림교회 정여임 목사

입력 2021-01-1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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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임 아가페드림교회 목사(가운데)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교회에서 뮤지컬배우 박찬양씨(왼쪽)가 건반을 치며 연극배우 최규호씨에게 노래를 지도하고 있다. 촬영을 위해 잠깐 마스크를 벗었다. 강민석 선임기자

코로나19로 공연예술계는 초토화됐다. 서울 대학로 소극장들은 1년째 개점휴업 상태다. 관객이 사라져 버린 재앙의 시대에 무대 뒤에서 소외된 무명 배우들과 함께해온 서울 아가페드림교회 정여임(68) 목사의 사역을 취재했다. 모이지 못하는 교회가 모이지 못하는 공연으로 힘겨운 배우들을 위로하며 묵묵히 동행하는 현장이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주민센터 맞은편 건물 지하 1층의 아가페드림교회 예배당. 100㎡ 남짓한 지하 공간 정면엔 십자가와 강대상이 있고 좌측 벽면은 전체가 거울로 뒤덮여 있다. 주일에는 예배당, 주중에는 대학로 배우들의 연습 공간으로 교회가 조건 없이 내놓은 장소다. 연극배우 최규호(28)씨가 아이패드로 악보를 공유하며 뮤지컬배우 박찬양(32)씨에게 노래 지도를 받고 있었다.

최씨에게 지난 1년은 어땠냐고 묻자 곧바로 눈가에 물기가 돌았다. 최씨는 “아무것도 못 한 1년이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노래 레슨을 받고 있다”면서 “연극배우에서 뮤지컬배우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래를 지도하는 박씨는 뮤지컬 ‘마틸다’ ‘라이어’ ‘정글북’ 등에 출연했고 현재 백석예술대 공연예술학부 뮤지컬과 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한다. 아가페드림교회 성도인 그는 정 목사를 향해 “처음엔 엄마였다가 이제는 친구가 된 목사님”이라고 말했다.

지하 1층에 자리한 교회로 내려가는 건물 입구 모습. 강민석 선임기자

코로나19 이전 아가페드림교회는 대학로 배우들의 밥집이자 연습공간이었다. 2013년 교회개척 이래 등록 성도 50여명의 90% 이상이 대학로 청년 배우들이다. 자취 생활을 하며 낮에는 프랜차이즈 카페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 무대에 오르던 이들이다. 집밥이 그리운 배우들을 위해 정 목사는 정말로 ‘엄마’가 돼 매주 화요일 오후 밥상을 차리고 예배를 드린 뒤 밥을 먹여 공연장으로 보냈다. 지하 예배당 한편에 제법 규모 있는 부엌이 있다. 정 목사는 자신의 사역에 대해 “기독 뮤지컬 등에 종사하는 문화사역자 배우들을 후방에서 섬기는 ‘나름의 문화선교’”라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공동식사부터 금지됐다. 아가페드림교회의 주일예배와 주중 성경공부 등 모임도 ‘구글 미트’를 활용한 비대면 사역으로 100% 전환했다. 그런데도 예배참석 인원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정 목사는 말했다.

“공연에 출연하면 회당 얼마씩 수당을 받는데, 코로나로 기획사들이 무너지면 무명 배우들은 출연료를 그냥 떼이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생을 접으려던 아이도 있었는데 가까스로 도울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잡아 주는 게 제 역할입니다. 밥은 같이 못 먹지만, 예배당 옆 부엌에서 쌀 김치 반찬 등을 가져가게 해놓았습니다. 월 1회 성찬을 진행하기 위해 미리 목사인 제가 기도로 나눈 개인 성찬기를 주중에 성도들 집에 일일이 전달하고 주일엔 구글 미트로 성찬을 진행합니다. 스타렉스를 끌고 제가 부지런히 다니기만 한다면 성찬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십자가 양초 성찬기를 배달해 집에서도 자리를 구별해 예배드리도록 했습니다. 동영상 편집도 코로나 때문에 배우게 됐습니다. 코로나가 제겐 선생입니다.”

정 목사 본인부터 코로나19에 취약한 고위험군이다. 신장이 한쪽밖에 없기 때문이다. 1997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생면부지 이웃에게 신장을 나눈 직후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됐다. 일찍 남편과 이별한 그는 우유배달 재봉틀일 등을 통해 어린 딸을 홀로 키웠다. 딸 신지은(42)씨 역시 창동염광교회(황성은 목사) 교육총괄 부목사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에서 보기 드문 모녀 목사다.

정 목사는 지난해 남대문교회(손윤탁 목사)의 제23회 김선경전도사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피난민의 어머니로 불리며 30여년을 전도사 신분으로 월남한 성도들을 돌보다 한국교회 최초 원로 전도사로 추대된 김선경(1905~1997) 전도사를 기리는 상이다.

정 목사는 “민망했지만, 목사 개인보다 교인 전체에게 주시는 상으로 알고 받게 됐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시대에 비록 작은 교회라도 목회자가 바쁘게 움직이면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꼭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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