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한 옆집, 울고 있는 아이… 신고하시겠습니까? [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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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분한 옆집, 울고 있는 아이… 신고하시겠습니까? [이슈&탐사]

[바뀐 법, 제2의 정인이 구할 수 있을까] ① 잡지 못한 구조신호

입력 2021-01-12 04:00
한 시민이 11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 앞에 설치된 정인이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16개월 여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양부모 재판을 이틀 앞두고 이곳에 근조화환을 설치했다. 연합뉴스

2019년 봄,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고 내다보니 옆집에 사는 태영(가명·3)이다. 아이는 젊은 부모, 태어난 지 100일 된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열린 문틈 너머로 쓰레기와 술병이 널브러져 지저분한 집안이 슬쩍 보인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종종 음식물 묻은 옷을 며칠씩 입고 다녔고, 몸에서 냄새가 났던 기억도 떠올랐다.

아동권리보장원이 제작한 아동학대 체크리스트대로 따져보면 태영이는 ‘불결한 환경이나 위험한 상태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방치’된데다 ‘청결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태영이를 보고 아동학대를 의심해 신고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신고가 이뤄지더라도 구출 작업은 진행될 수 있을까.

숨을 거둘 때까지 이어진 잔혹한 폭행, 치료받지 못해 곪은 상처, 옷 속에 감춰진 깡마른 몸…, 한국 사회가 그리고 있는 아동학대 사건의 ‘전형적 상(像)’이다. 제도는 이런 극단적 모습이 드러나야만 겨우 작동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태영이가 외부에 노출한 시그널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이웃의 신고로 전문기관이 한 차례 개입했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악취를 인지했지만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태영이의 울음소리가 들린 날로부터 2주 후 태영이의 동생이 방치된 상태로 잠을 자다 질식해 죽었다.

지금 시스템에는 아기의 위험을 인지할 수 있는 안테나가 없다. 태영이의 엄마, 아빠는 갓난아기와 3살 아이만 두고 자주 집을 비웠다. 태영이 동생의 엉덩이에는 기저귀를 자주 갈지 않아 생긴 발진이 있었다. 저녁엔 또래 아기들보다 50~100㎖ 많은 분유를 마시고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사건 당일 저녁에도 엄마, 아빠는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엎드리게 해둔 뒤 술을 마시러 집을 비웠다. 이후 15시간 동안 한 번도 아기를 들여다보지 않았고, 그 사이 아이는 숨을 거뒀다.

더러웠던 집과 종종 지저분했던 태영이의 옷가지는 부모의 방치를 외부에 드러낸 작은 시그널이었다. 사회가 이 시그널을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한 순간 아이는 학대 사망 피해자로 생을 마감하게 됐다.


국민일보는 최근 3년간 형이 확정된 아동학대 사망 사건 48건의 판결문과 사건 기록을 전수조사해 사망 아동들이 보냈던 구조 시그널을 분석했다. 사건에는 모두 감지 가능한 징후가 있었다.

유기·방치된 아이들은 갈수록 몸무게가 줄어 저체중 상태에 빠지기 일쑤였고, 옷 속에 멍 자국을 새기고 있었다. 영유아 건강검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보건·보육 체계에 장기간 등장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생후 4개월 된 다른 아기는 학대가 알려질까 두려웠던 부모 탓에 예방접종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학대를 의심할 시그널이 존재했는데도 모두 사망했다는 건 제도에 심각한 허점이 있음을 방증한다.

국회는 지난 8일 본회의를 열고 학대 피해 아동들을 구출하겠다며 민법 개정안과 아동학대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안을 처리했다. 하지만 이 법을 과거 사건에 대입해봐도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는 많지 않다. 개정안은 왜 한국 사회가 학대의 시그널을 인지하지 못하고, 즉각적인 구조 작업을 하지 못하는지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책을 쏟아내고도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근절하지 못한 이유를 분석했다. 1회는 아이들이 보낸 시그널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다.

포착되지 않은 구조 시그널

2살 우주(가명)는 예방접종을 딱 한 번밖에 받지 못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맞은 B형 간염 1차 예방주사가 전부였다. 생후 17개월이 될 동안 한 차례에 그쳤던 예방접종 기록은 우주가 세상에 보낸 첫 번째 시그널이었다.

아빠는 우주가 태어나기 전 감옥에 갔다.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 우주와 4살 아들을 키우는 엄마는 1주일 중 4일은 밤 9시부터 새벽녘까지 일했다. 아이들만 집에 남겨둬야 했는데,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두 번째 시그널이다.

엄마는 두 아이를 돌보기 벅찼는지 2019년 1월 말 첫째만 24시간 보육시설에 맡겼다. 혼자 우주를 키우면서 주변 지인들에게 “우주에게 정이 안 가” “애가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하곤 했다. 엄마 입을 통해 전해진 세 번째 시그널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우주는 영양실조와 탈수로 숨을 거뒀다. 아이는 기온이 영하를 넘나드는 겨울 끝자락, 보일러도 작동하지 않는 원룸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면서 엄마 없는 밤을 보낸 지 3개월 만에 찾아온 죽음이었다. 우주는 생후 8개월 몸무게가 7.8㎏에 불과했고 사망 당시는 6.2㎏으로 오히려 더 줄었다. 성장 표준치 하위 3% 미만이었다.

아이의 마지막은 모두가 분개할 만한 장면이다. 그러나 사망사건이 발생하기까지 장면들은 현 시스템으로는 포착이 어렵고, 포착돼도 적극적 조치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부는 우주 같은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우주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인 2016년 3월, 보건복지부는 “각종 복지 빅데이터를 활용해 학대 아동을 찾아내겠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벌였다. 그때도 계기는 아동학대 사망사건이었다. 경기도 평택에서 친부와 계모에 의해 폭행 당하던 7살 원영이가 목숨을 잃었고, 정부는 ‘고위험 가정 조기 발견’을 대책에 포함시켰다. 예방접종 데이터를 활용한 안전 확인 조사 범위를 4~6세 아동에서 3세 이하로 넓힌다는 내용이었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거나 입학설명회에 참여할 때 부모 교육도 받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2살 우주는 이 제도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았다.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우주는 위기 아동에 해당하지만 대상에 포함된 아이를 모두 방문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예방접종 등 41개 공적 정보를 모아 위험도를 평가한 뒤 그 가운데 10%만 방문조사를 취해 왔다.

우주가 목숨을 잃은 다음 달, 충남 천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생후 4개월인 한 남자아이는 3회의 예방접종을 하고 병원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후 3개월 동안 병원을 찾지 않아 또래 영유아에 대한 필수 예방접종 8개를 하지 못했다. 그 기간 아이는 거의 매일 밤 아빠에게 뺨과 머리를 맞았다. 아동학대로 아이가 크게 다치자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숨긴 사례도 많았다.

이런 아이들은 지금도 발굴이 어렵다. 정부도 제도에 구멍이 있다고 보고 지난해 4월 방문조사 대상 위기 아동 선별 방식을 바꿨다. 예방접종 여부, 영유아 건강검진 실시 여부, 장기간 병원 미방문 여부 등 세 가지 기준을 놓고 평가해 방문 조사를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한시적인 기준 변화에 불과한 데다 예방접종 외에 다른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았을 경우 발굴이 안 된다.

보호자가 은폐하면 아무도 몰랐다

2018년 겨울 제주에서는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5살 남자아이가 사망했다. 머리에 깊게 팬 상처가 있었고, 얼굴과 몸에는 여러 개 멍 자국이 있었다. 계모에게 맞은 것인데, 아이는 1주일 넘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고, 다친 상태에서도 반복적인 폭행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검에서 머리와 가슴, 등, 팔다리에 모두 33곳의 오래된 상처가 새롭게 발견됐다.

학대의 흔적은 사실 훨씬 전부터 주변에 포착됐었다. 아이는 사건 발생 8개월 전 거짓말을 하고 물건을 훔친다는 이유로 계모에게 맞았고 팔에 멍이 들었다. 어린이집 교사가 이를 발견했지만 학대가 아닌 훈육이라고 판단해 문제로 삼지 않았고, 국가 개입도 이뤄지지 않았다. 재판부마저 이 부분에 대해선 “아동에 대한 훈육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봤다.

체벌을 금지한 민법 개정으로 이런 사건은 발견만 하면 구출될 여지가 생겼다. 하지만 이 역시 체벌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을 경우 작동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처벌 강화 위주 대책이 가해자의 은폐 경향을 높이고 있었다.


생후 5개월이 채 안 돼 아버지에게 맞아 죽은 샛별(가명)이가 그랬다. 무직인 샛별이 부친은 처가에 잠시 들어가 살았다. 취업 문제로 장인·장모와 갈등이 있었고, 아이 울음은 어른들의 감정을 폭발시킨 도화선이 됐다. 아이는 죽기 직전 두 달간 운다는 이유로 90차례 맞았다. 폭행 흔적이 몸 곳곳에 새겨졌는데, 가족들은 처벌을 두려워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모두가 은폐의 공범이 됐다.

일본의 경우 아동학대 발생 예방을 위해 ‘생후 4개월 영아 전 가정방문 사업’을 한다. 하지만 보호자인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거처가 분명한 샛별이의 시그널을 감지할 대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48건 중 부모가 처벌될 것을 두려워해 피해 아이를 외부와 단절시켰다가 죽음에 이른 사건이 40건에 달했다. 이 중 예방접종을 하지 않거나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가족이나 친척이 학대 사실을 은폐한 사례가 26건이었다. 나머지 14건은 아이가 크게 다쳤지만 폭행 사실이 드러날까 봐 방치해 죽음에 이른 사례였다.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는 “친족이 전과자가 될까 봐 신고를 꺼리는 경향이 있어 신고의무자를 일정 범위 내 친척으로 넓혀야 한다”면서도 “처벌을 약하게 하면 보호자가 악용해 계속 학대할 수 있고, 반대로 엄벌하자니 신고가 어려워질 수 있는 점은 딜레마”라고 말했다.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도 “대부분 학대는 집 안에서 발생해 물리적 증거 확보가 어려운데 경찰이 수사하면서 가해 사실이 증명되지 않으면 아동 안전을 면밀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안 개정으로 1차 신고 때부터 수사가 이뤄지게 됐지만 이 역시 경찰이 입증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다.

신호 감지하고도 작동 못한 시스템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아기는 성탄절 이튿날 충북 단양의 한 가정집에서 죽었다. 사인은 두개골 골절과 지주막하출혈. 울고 보챈다는 이유로 친모에게 맞았다. 지적장애가 있는 엄마는 세 아이를 키우느라 육아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태였다. 남편은 새벽 2시에 일을 나가 하루 19시간을 일했다. 신문 배달, 도시락 배달, 학원 차량 운전 등을 마치면 저녁 9시30분이 됐다. 집에 오면 녹초가 돼 쓰러져 잠들기 바빴다.

그런데 아이의 위기를 알린 건 빈곤한 가정환경만이 아니었다. 엄마는 이미 넉 달 전 다른 자녀에 대한 학대 신고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사망한 아이의 오빠였다. 앞니가 빠져 있고, 몸에 멍이 들고, 화상을 입은 상태로 방치된 세 살 아이를 어린이집 원장이 발견해 신고했고, 법원은 모친의 접근금지를 명령하는 임시 격리조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국가는 다른 자녀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 사망한 아이의 오빠가 돌아갈 수 있도록 가정을 회복시키는 일에도 미흡했다. 그 와중에 갓 태어난 아이가 학대로 사망했다. 이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양육에 관한 사회적 지원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이를 “피해자의 사망을 온전히 피고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려운 사정”이라고 판시했다.

또 다른 아이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졌다가 엄마에게 돌아간 지 두 달여 만에 목숨을 잃었다. 헤어진 동거남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고 엄마는 낙태를 원했지만 할 수 없었다. 출산 3주 만에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유기했지만 신원이 밝혀져 경찰에 입건됐다. 국가는 엄마가 아이 보호자라며 데려가 키우도록 했다. 그러나 아이 양육을 위한 개입은 없었다.

엄마도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어릴 적 부모의 이혼으로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살아야 했고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했다. 양육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고, 범행 당시 수년째 우울증 약도 복용하고 있었다. 혼자서는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는 신호를 내비친 셈이다. 그런데도 사망 사건이 발생한 건 아동학대가 ‘사건화(事件化)’돼야만 뒤늦게 개입하는 무책임한 시스템의 전형을 보여준다.

눈에 빤히 보이는 위기 환경에조차 무감각한 시스템도 학대사망 사건의 단초였다. 인천 계부 학대 사건이 그렇다. 피해아동(5세)의 엄마는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친부와 이혼한 뒤 계부를 만났다. 하지만 계부도 폭력 성향이 있었다. 엄마는 직접 새 아빠를 경찰에 신고했고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도 받아냈다. 하지만 접근금지 기간 1년이 지나자 계부는 다시 아이 곁으로 돌아왔다. 시설에서 지내던 아이를 데려온 계부는 다시 학대를 시작했고, 아이 엄마는 무력감에 학대를 방치했다. 피해 아동은 친부와 계부, 두 명의 아빠로부터 학대를 겪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접근금지 기간 계부의 성향이 바뀌었는지, 아이와 함께 지내도 괜찮은 상태였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이는 아동의 양육과 보호를 여전히 가정의 문제로만 여기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김미숙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아이는 부모의 소유가 아닌 국가가 키워야 할 공공재”라며 “(양육과 보육은) 국가가 담당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되지 않는다면 제도가 있어도 제대로 실행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슈&탐사1팀 전웅빈 문동성 임주언 박세원기자 imung@kmib.co.kr

[바뀐법, 제2의 정인이 구할 수 있을까]
▶②난 끝내 죽음을 막지 못했다… 아동학대 신고현장의 비극 [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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