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인생 후년의 화두

국민일보

[너섬情談] 인생 후년의 화두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입력 2021-01-13 04:02

한 살 나이를 더 먹었다. 2020년 12월 통계청 ‘생명표’에 따르면 내 나이 남자들의 기대 여명은 30.2년이다. 아내는 나보다 더 길어 37.5년이다. 촛불이 타들어가듯, 지상의 날이 이제 한 해 더 줄고, 함께 사랑을 나눌 날도 그만큼 짧아졌다.

돌아보면 기특한 삶이었다. 한낱 살덩이로 태어나 언어를 익히고 문학을 공부하고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배우고 아이를 낳아 길렀다. 항상 힘에 부쳤으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힘껏 나아가 삶을 배우고, 모자란 것은 어른들 말을 듣고 동료와 대화하고 책을 읽어 채웠다. 도무지 답이 없어 보일 때에는 불어오는 바람이, 피어나는 꽃이, 흘러가는 물이 살길을 알려주었다.

히브리인들은 바람 속에서 성스러운 영이 임하는 것을 보았고, 그리스인들은 독수리 나는 모양을 보고 하늘의 뜻을 짐작했다. 또 중국의 현자들은 자연의 변화로부터 인간이 살 바를 읽는 법을 ‘역(易)’이라는 책으로 남겼다. ‘역’은 변화라는 뜻이다. 변화란 이대로 살아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을 말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인간이 길을 잃을 때 자연이 길을 열어준다는 것은.

때때로 인간은 지나온 시간을 살펴 앞날을 채비하려고 일부러 변화를 일으킨다. 새로운 해를 시작하고, 새로운 출발을 기획하고, 새로운 인생을 다짐한다. 해마다 이 무렵 우리는 모두 변화를 꿈꾼다. 더 돈을 벌고, 더 나은 성적을 받고, 더 사랑하고, 더 건강하기를, 한마디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것을 갈망한다. 소망을 나열하고 할 일을 점검하며 계획을 마련한다.

통계 숫자는 나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나, 남들과 비교해 내 인생이 객관적으로 어디쯤에 있는지는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여생을 기준 삼아 삶 전체를 크게 세 등분하면 내 삶은 세 번째 바퀴를 굴리기 시작한 셈이다. 초년의 삶에서는 이미 세상이 아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배움이 중요했고, 중년의 삶에서는 사람들을 겪으면서 세상에 이런저런 것들을 이룩하는 실천이 우선이었다. 후년의 삶은 어떻게 꾸려야 할 것인가.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새로운 연령 분류 기준을 발표했다. 공중위생의 꾸준한 개선과 의학의 발달에 따라 이른바 ‘100세 시대’를 맞이했으므로, 인생 각 단계를 새로 규정해 보자는 것이었다. 0~17세는 미성년, 18~65세는 청년, 66~79세는 중년, 80~99세는 노년, 100세 이후는 장수이다. 이 표를 받아들고 아직도 청년이라며 의욕을 보이는 이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청년인지 아닌지는 삶을 몇 년 살고 여생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따라 정해지지 않는다. 새로운 일에 더 호기심을 느끼고, 새로운 경험을 더 좋아하며, 새로운 관계에 더 몰입하는 역량이 있을 때에만 인간은 청년일 수 있다. 알아서 행하는 일보다 행해서 아는 일이 더 많을 때 인간은 청년일 수 있다. 오늘이 어제와 다르고 내일이 오늘과 다르도록 나날이 시도를 거듭할 때에만 인간은 청년일 수 있다. 성장판이 닫힌 인간은 도저히 청년일 수 없다. ‘아직 청년’을 자임한다면 여기에 값하게 살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일찍이 소포클레스는 “적당한 몫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긴 수명을 바라는 자는 어리석다”(‘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고 말했다. 틀어쥔 지위와 남은 미련을 잊지 못하고 주어진 몫을 더 늘리려 애쓰는 것은 어리석을 뿐이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세 가지, 먹고사는 일과 이름을 얻는 일과 의미를 도모하는 일이다. 먹고살 걱정을 멈출 수 없고, 이룩할 꿈도 남았으나, 후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인생이 허망해지지 않도록 좋은 관계와 깊은 의미를 쌓는 일이다. 의미는 당장의 욕구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고 이를 추구하는 일에서 생겨난다. 나이 들수록 의미에 집중하는 힘이 필요하다. “너의 가치는 무엇인가?” 인생 후년의 화두로 세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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