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文정부 부동산 4년의 복기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文정부 부동산 4년의 복기

입력 2021-01-15 04:05
“주택공급은 부족하지 않다
집값상승 투기세력 탓이다”
이런 진단에서 시작된 정책은
우리의 경제관념을 바꿔놨다

“열심히 일해야 잘산다”
믿으며 버티던 사람들을
“열심히 일해선 잘살 수 없다”
자산 투자에 매달리게 했다

소득주도성장 외치던 정부가
근로소득의 완패를 불렀다


2017년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의 취임식은 전문가의 프레젠테이션처럼 진행됐다.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단상에서 그는 “아직도 집값 과열의 원인을 공급 부족에서 찾는 분들이 계신 것 같다”는 말로 취임사를 시작했다. 공급 부족 탓이 아니라는 근거 자료가 스크린에 떴는데, 그해 5월의 주택거래 통계였다. 이렇게 설명했다. “집값이 과열됐던 5월 거래를 보면 무주택·1주택자가 집을 산 비율은 작년 동월보다 줄었습니다. 그럼 어디서 증가했을까요. 집을 세 채 이상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공급 부족론을 반박하려면 입주물량 분양물량 같은 것을 제시할 법한데, 그는 누가 집을 샀는지를 말했다. “공급 부족 탓이라면 실수요자가 몰렸겠지요”라고 했다. 1년 열두 달 중 한 달의 거래내역이 주택 수급을 얼마나 말해주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을 근거로 부동산 정책의 대전제가 만들어졌다. “공급은 부족하지 않다.” 그리고 진단이 내려졌다. “집값 상승은 투기세력 때문이다.” 그 투기세력을 김 장관은 콕 집어냈다. “집을 세 채 이상 가진 사람들.” 맞서 싸울 ‘적’이 특정된 것이다.

이 적은 사실 한 줌에 불과했다. 당시 서울에 집을 가진 243만명 중 3주택 이상 보유자는 고작 4%였다. 쉬워 보였을 것이다. 이들의 투기수요만 차단하면 집값이 안정되리라 여겼던 것 같다. 대책이라 불렀지만 응징에 더 가까웠던 부동산 정책은 세 갈래로 진행됐다. ①그들이 주로 사던 재개발·재건축을 틀어막았고 ②집을 사기 어렵게 대출을 차단했고 ③사도 남는 게 없도록 양도세를 대폭 올렸다. 셋 다 주택시장에서 급격한 매물 감소를 부르는 정책이었다. ①로 인해 도심의 유일한 신규 매물 공급원이 끊겼다. ②는 대출을 지렛대 삼아 집을 옮기던 이들의 매물까지 축소했다. ③을 통해 집값을 안정시킨다는 발상은 난센스였다. 다주택자가 집을 팔게 하려면 보유세를 먼저 올렸어야 했다. 집을 갖고 있는 게 부담스러워야 팔 것 아닌가. 오히려 파는 게 부담스러워지는 양도세를 꺼내면서 다주택자 매물은 거꾸로 자취를 감췄다.

매물 잠김이 가속화되니 어쩌다 거래되는 것마다 신고가를 경신했다. 집값이 계속 뛰자 정부는 세 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분양가상한제와 초과이익환수제로 재건축을 더 틀어막았고, 대출은 ‘15억원 이상 금지’란 극약처방까지 꺼냈고, 양도·보유·취득세를 다 같이 왕창 올렸다. 이것은 적의 범위를 넓혀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2017년 타깃은 3주택 이상 보유자였는데, 2019년에는 전세 끼고 집 사는 갭투자 전반으로 세금·대출 규제가 확대됐다. 미래에 이사할 집, 미래에 거주할 내 집을 찾던 1주택·무주택자까지 투기세력 취급을 받았다.

갭투자자는 매매 시장의 수요자지만 전세 시장에선 공급자다. 갭투자를 막으니 임대물량 부족에 전셋값이 들썩였다. 그러자 2020년 임대차 3법을 강행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전세는 씨가 말랐고, 월세까지 폭등했고, 전세 낀 집은 사고팔기 어려워 매물이 더 잠겼으며, 올해 들어 거래된 서울 아파트 절반이 역대 최고가를 찍었다.

2017년 주택공급은 김 장관 말처럼 부족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꺼낸 모든 정책이 이렇게 매물 감소를 불러 극심한 공급 부족을 초래했다. 동시에 물밑의 잠재 수요를 폭발시켰다. 집값 폭등에 공포를 느낀 이들이 패닉바잉에 나섰고 전세난에 치인 이들이 영끌을 했다. 그가 지목했던 투기세력은 이제 주택매수 대열에서 사라졌다. 서울에서 다주택자가 집을 사려면 8% 넘는 취득세와 매년 엄청난 보유세를 내야 한다. 집값 상승 원인이라던 다주택 투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는데 집값이 계속 뛰는 건 실패한 정책이 깨워낸 자산 수요가 워낙 거대하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보며 자산의 힘을 절감한 사람들은 부동산에만 머물지 않았다. 주식을 대체재로 삼자 코스피 3000 시대가 열렸다. 국민일보 신년기획 타이틀은 ‘자산소득, 생존의 뉴노멀이 되다’였다. 여론조사를 해보니 “근로소득으론 원하는 부를 쌓을 수 없다”는 의견이 절대다수였다. 젊은 층에선 “부동산은 불로소득이 아니다”라고 했다. ‘열심히 일해야 잘산다’던 한국인의 경제관념이 ‘열심히 일해선 잘살 수 없다’로 바뀌었다. 근로소득은 별로 잘못한 것도 없이 자산소득에 완패했다. 불과 4년 새 벌어진 거대한 변화. 그것은 이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공급은 부족하지 않다. 투기세력 때문이다.”

편집국 부국장 wjta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