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대통령과 문파, 관계 재정립 시작됐다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대통령과 문파, 관계 재정립 시작됐다

입력 2021-01-19 04:01 수정 2021-01-19 04:01
추윤 사태와 원전 수사에 대해
문파와 결이 다른 입장 정리
지극히 합리적… 문 대통령의
이런 선택은 여권 권력 분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강성 지지에 휘둘리지 말고
책임윤리 기반한 순조로운
권력 마무리가 개혁에 더 도움


문재인 대통령의 18일 신년 기자회견은 예상대로 밋밋했다. 예상대로라는 건 사실상 일할 수 있는 임기 마지막 회견이라는 점, 사이다보다는 신중한 고구마 이미지의 평소 소통 자세 등을 감안할 때 누구라도 그렇게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대통령의 마지막 신년 기자회견은 대개 그동안의 공과를 모양 좋게 마무리한다는데 초점을 맞춘다. 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안은 많지만 원론적인 답변, 듣는 사람은 좀 답답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짧게 지나갔지만 확 바뀐 게 있다. 취임 이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대통령과 강성 지지파, 이른바 문파와의 관계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그 이상이 관계가 나빠졌다는 것만 의미하는 건 아니다. 듣는 이의 귀를 탁 잡을 만한 변화를 감지했다. 아마도 관계 재정립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문 대통령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석열 검찰총장 간 사태를 명료하게 정리했다. 윤석열이 “문재인정부 검찰총장”이고 “정치를 염두에 두고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추·윤 갈등에 대해 국민에게 송구하고, 반성할 점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민주주의의 일반적인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또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결정과 관련한 감사에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와 관련한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감사원으로부터 이첩된 데 따라서 이뤄진 것이지 그 이상으로 정치적 목적의 수사가 이뤄졌다고 생각 안 한다”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

추·윤 사태와 월성 원전 사태는 문파의 집단적 무차별 공격이 있었던 민감한 정치 사안이다. 문파와 이들을 등에 업은 일부 강성 의원, 방송 진행자, 팟캐스터들의 닥치고 공격의 행태와 비이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다. 억지 논리는 대개 시간이 좀 지나면 합리적 사고에 배척되기 마련이다. 진영 논리가 스며든 비뚤어진 신념윤리는 결국 책임윤리에 밀리게 된다. 설사 어느 정도 정의로운 주장이더라도 수단과 방법이 정의롭지 못하면 반드시 역풍을 맞는다. 전 법무부 차관 김학의의 긴급출국금지에 대한 지금의 논란이 그렇다.

문파는 추·윤과 원전 사태를 개혁을 방해하는 수구세력의 불의한 악다구니로 단단히 못을 박았다. 그런데 그들 처지에서 보면 대통령은 한순간에 아주 결이 다른 말을 했다. 그것도 전 국민 앞에서 시쳇말로 ‘배신을 때린’ 것이다.

문파들이 보기에 대통령은 왜 중대한 입장 전환을 했을까. 애당초 이런 입장이었을까. 대통령이 문파와의 근본적인 관계 재정립을 하겠다는 신호로 읽어야 한다. 그건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부터 가시화됐다. 권력의 순조로운 마무리와 대통령을 짓누를 법한 책임윤리의 실현을 위해서일 것이다.

단순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민주주의의 치욕인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퇴장 소동은 강성 지지에 휘둘리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가늠케 한다. 적어도 합리적 처신은 뒤를 이을 사람들의 행동을 불편하게 제어하진 않는다. 문 대통령은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합리적 마무리를 선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문파의 주장이 오히려 대통령의 입지를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은 늘 있었다.

그러면 그동안 왜 이 혼란을 정리하지 않았느냐는 보수 진영의 힐난은 당연한 반응일 것이니 논외로 치자. 앞으로 여권과 문파 내부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단은 혼란스러울 것이고, 문파 내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일부 의원과 빅 마우스, 그러니까 전파력 최강자들이 원색적 의견을 교환하며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엄청난 논의를 할 것이다. 아마도 19일 아침 방송 때쯤 일차 정리된 입장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올 것이다. 그 의견을 퍼 나르면서, 여론의 향방도 보면서, 수정·보완을 거쳐 새로운 정치적 논리와 주장이 만들어지면 여기저기서 SNS의 작업이 예상된다. 대통령의 입장 정리로 문파 안의 노선이 갈리고, 대선 후보 경선으로 갈등이 증폭돼 여권 내부의 권력 분화가 이뤄질 것이다.

대통령의 마무리가 좋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 정치사를 위해서도 불행하다. 단순히 민심 이반과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해 입장 정리를 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와 달리 합리적 선택을 한 것으로 평가한다.

편집인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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