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증세를 생각할 시간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증세를 생각할 시간

권기석 이슈&탐사2팀장

입력 2021-01-20 04:04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이익공유제에는 고심의 흔적이 묻어 있다. 고소득자는 더 부자가 되고 저소득자는 더 가난해지는 K자형 양극화 국면에서 그는 집권당 대표와 대선주자로서 역할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정된 국가 재정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돈을 써야 하는데 호주머니에 돈이 없는 답답한 상황이 ‘코로나로 이익을 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라는 어젠다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여러 비판처럼 자발적 참여는 실현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아무런 강제 조치가 없는데 순수하게 돈을 낼 기업이 어디 있을까. 국회가 법을 만들고 정부가 옆구리를 찔러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낸다고 해도 충분한 재원이 마련될지 의심스럽다. 양극화 해소 의지가 있다면 좀 더 근본적인 재원 마련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 방법은 현실적으로 증세일 수밖에 없다.

증세는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국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아지는 상황에선 달리 방법이 없다. 증세라는 정공법을 택하고, 정치가 국민과 기업을 설득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중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의 비율을 뜻하는 국민부담률은 2019년 기준 27.3%다. 이 비율의 상승 속도가 빠르긴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18년 34.0%)보다 여전히 낮다. 국민부담률 중 조세부담률만 분리해 봤을 때 2018년 기준 19.9%로 OECD 평균 24.9%에 비해 5.0% 포인트 낮다. 증세할 명분과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증세는 ‘저부담 저복지’ 국가에서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누구를 상대로 세금을 더 걷느냐다. 증세가 지금 당장 공론의 장에 오른다면 두 가지 주장이 맞설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부자 증세’와 ‘보편 증세’다. 부자 증세는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세금을 더 내라고 하는 것이다. 정의당이 주장하는 특별재난연대세가 이에 해당한다. 코로나 위기에서 소득이 급증했거나 높은 소득이 있는 기업 또는 개인에게 한시적으로 세금을 더 걷자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 아르헨티나 의회는 최근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일회성 부유세를 걷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영국에서도 지난달 조세 전문가 그룹이 일회성 부유세 도입을 촉구했다. 미국은 민주당이 상원마저 장악하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법인세 인상 공약이 실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부가가치세 인상 등으로 모두에게 세금을 더 걷자는 보편 증세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고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한 증세는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며 오히려 이들의 거센 저항을 불러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갖고 있다. 또 복지 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부가세 비중이 높으니 우리도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한 현 부가세율을 높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보수의 시각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민주당 의원 20여명의 모임 ‘더좋은미래’의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는 지난해 5월 보고서에서 부자 증세와 더불어 소득세 면세점 인하, 부가세 인상 등 보편 증세를 주장했다.

부자 증세와 보편 증세, 당장 둘 중 하나를 택할 필요는 없다. 둘이 반드시 대립하는 의견도 아니다. 둘을 절충할 수 있고 하나씩 단계적으로 실시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누가 증세론 자체에 불을 붙이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느냐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이지만 두 개의 큰 선거를 앞둔 시점에 누가 나설 수 있을까 싶다. 세금을 더 내자고 용기 있게 나설 서울시장 후보, 대선 후보를 기다린다.

권기석 이슈&탐사2팀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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