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손님 되기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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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손님 되기의 윤리

입력 2021-01-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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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상황은 우리 시간에 균열을 일으키고, 친밀하던 소통의 통로를 끊어버렸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마음을 애써 간종그리려 해보지만 쉽지 않다. 명랑한 표정을 지어보려 해도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는 이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다.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웬만하면 쓰지 않던 ‘그립다’는 말을 이제는 주체하지 못한다. 누군가 그런 표현을 써도 낯설지 않다. 감상적이라 비난받더라도 바야흐로 그리움의 시대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시간 속을 바장이며 살기도 하지만, 공간 제약을 받아들이며 살 수밖에 없다. 이곳에 있으며 동시에 저곳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열린 팬데믹 세상은 인간의 공간 경험이나 장소 경험이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차가 있다고는 해도 지구촌 저쪽에 있는 이들과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누구와도 만날 수 있다. 공간이 납작해진 것이다. 납작해진 공간을 통해 온기를 느끼거나 뉘앙스까지 알아차리기는 어렵지만 경계선 너머 세상과 접촉할 수 있는 여지는 한결 커졌다.

며칠 전 미국 시카고 한 교회 교인들과 줌을 통해 대화를 나눴다. 생면부지의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존재의 중심을 향해 가는 순례자라는 공통점 때문에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1년 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할 줄 아는 동물이라는 말이 옳다. 대화하며 느낀 것은, 많은 이들이 코로나19의 심각성 못지않게 자기 불화 문제에 관심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원의와 그렇게만 살 수는 없는 현실 사이의 거리 말이다. 함께 살아야 하는 타자는 우리 존재의 터전이지만 때로는 덫이 되기도 한다. 이름과 실재, 바람과 현실 사이의 간극 혹은 불화가 삶의 무게를 더한다.

인간은 누구나 태생적으로 유배자이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때로는 무겁게 느껴지지 않던가. 유배자의 내면을 지배하는 것은 불안이다. 살갗이 벗겨진 것 같은 쓰라림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이웃들이 무심코 던진 말이나 적대적 눈빛은 우리 속에서 온기를 빼앗아간다. 그 빈자리에 냉기가 스며들 때 삶의 공허함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지금 하는 일들이 부질없어 보이고, 늘어진 테이프에서 재생되는 소리처럼 삶은 지루해진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유배자 의식을 적극적으로 부둥켜안아야 한다. 세상을 고향처럼 편안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강자이지만, 변방에 처한 이들의 상처와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시인 정호승은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늘의 서늘함이 배어들지 않은 사람에게서 향기를 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아직 중심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자각,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잠시 손님으로 와 있을 뿐이다.

비평가인 조지 스타이너는 인간은 납득할 수 없이 삶에 던져진 인생의 손님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의 손님이 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상호 파괴와 영원한 혐오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 손님은 손님다워야 한다. “손님은 주인의 법과 관습을 받아들일 뿐, 그것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주인의 언어를 익히면서, 그것을 더 잘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나의 쓰지 않은 책들’)

그가 말하는 주인이 누구이든 독자인 나는 그 주인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손님이 되어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의 책임은 처음 왔을 때보다 이 세상을 더 아름답고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당을 쓸고 물을 뿌리고 은모래를 깔아 손님을 영접했던 옛사람들처럼, 누군가를 그렇게 손님으로 맞아들이며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조금은 닮게 되지 않을까.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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