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공병원 확충 시급하다

국민일보

[기고] 공공병원 확충 시급하다

조희숙(강원대 교수· 의학전문대학원)

입력 2021-01-21 04:04

10여년 전 학회 참석을 위해 호주 멜버른에 갔을 때 일이다. 공공병원을 견학하기 위해 빅토리아주가 운영하는 ‘로열 어린이병원’을 방문했다. 작고 초라한 공공병원이 아니라 복합쇼핑몰처럼 거대한 빌딩의 모습에 압도됐다. 당시 국내 공공병원 평가를 위해 전국 지역거점 공공병원을 둘러본 직후였던 터라 더 그랬다. 공공병원에 대한 선입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시설, 규모, 운영 측면에서 우리의 공공병원과는 달랐다. 우리는 어떤가. 병원 앞에 ‘공공’이라는 글자가 붙는 순간 낙후된 시설에 질 낮은 서비스, 비효율적 운영을 연상한다. 한마디로 혈세 낭비 기관으로 낙인찍는다. 편견 또는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비상 상황은 공공병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했다. 천덕꾸러기 병원이 아니라 국민 건강권 확보를 위해 시급히 확대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정부는 코로나 3차 확산이 가속화된 지난해 12월 급하게 공공의료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구체적 노력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강원도는 1, 2차 유행 당시 환자 발생이 드물었고 도내 5개 지역거점 공공병원이 있다는 점은 다행이었지만 3차 유행이 닥치면서 공공의료는 한계에 봉착했다. 국내에서 의료 수준이 가장 취약한 영월권(영월·평창·정선군)과 동해권(삼척·태백·동해시)에서 발생한 환자들은 원주·강릉·속초 의료원으로 이송돼야 했다. 더욱이 강릉·속초 의료원도 경증 환자에 한해 수용력을 갖췄을 뿐이라 중증 환자의 경우 감당할 수 있는 곳으로 전원(轉院)해야 했다.

민간병원의 협력, 병상 강제동원 정책은 의료 취약지에서는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강원도가 비단 코로나 환자 치료에 취약한 여건이라는 것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영월권 거주 주민들은 응급 심장 수술을 할 의료기관이 전혀 없어 모든 환자가 다른 지역 병원으로 가야 한다. 이는 고스란히 이 지역의 높은 치료 가능 사망률과 이어진다. 코로나 환자든 급성 응급 환자든 무엇 하나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여건인 것이다. 취약지역의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수적 의료에 대한 기본적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답은 공공병원 확충뿐이다.

의료 취약지는 인구밀도가 낮다. 자연히 수익 발생이 적고, 그로 인해 민간병원이 설립되지 않는 구조다. 사정이 이런데 정작 취약한 곳에 공공병원을 건립하는 데 시장 논리로 경영 효율을 따지고 예비타당성 잣대를 적용한다면 취약지 공공병원 건립은 요원하다. 또 막연한 공공의료 강화에 대한 구상은 ‘비슷한 것’일 뿐 취약지에서 체감할 수 있는 ‘바로 그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따라서 공공병원 및 인력 확충에 대한 구체적 정책 없이 공공의료 강화는 어렵다. 국민 건강 안전망 보장은 시대정신이고 국가의 품격을 상징한다.

조희숙(강원대 교수· 의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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