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벼락 거지

국민일보

[한마당] 벼락 거지

김의구 논설위원

입력 2021-01-21 04:05

김수용 감독의 1961년 코미디 영화 ‘벼락부자’는 평범한 회사원에게 난데없이 3000만 달러가 송금되면서 벌어지는 우여곡절을 담았다. 6·25 전장에서 구해준 미군 병사의 유산이 전달된 것인데, 주위에 여성들이 모여들고 기부금 청탁이 쇄도한다. 돈을 노린 악당들에 쫓기기도 하다 거액 송금이 미국 은행의 착오였다는 통보가 오면서 해프닝으로 상황이 정리된다.

영화와 달리 벼락부자가 실체 있는 사회계층을 지칭하는 개념이 된 대표적인 경우가 ‘강남 벼락부자’다. 60년대 중반 영동 개발이 시작된 이후 부동산으로 막대한 부를 거머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강남 졸부’란 표현이 더 자주 사용됐는데 질시와 비하가 함께 녹아든 개념이었다.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고 돈을 제대로 쓸 줄 몰라 탕진하기 일쑤였던 벼락부자들에 대한 비아냥이 섞인 용어였다. 강북의 명문고들이 대거 이전한 뒤 강남에 자리 잡은 이들은 새로운 계층을 형성했다. 고학력에 경제적 지식까지 갖춰 자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했고 재산은 물론 학벌까지 대물림하려 공을 들였다.

최근 ‘벼락 거지’란 말이 등장했다. 자산 가격 상승 속에서 소외감을 느낀 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당초 아파트값과 전세가가 급등하면서 주거가 불안정해진 이들을 일컬었으나 주식 등 자산 투자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을 염두에 두고 주식에 선투자한 ‘동학개미’에 빗대 직장생활에 충실하며 근로소득을 착실히 저축한 샐러리맨들을 ‘일개미’라 부르기도 한다. 벼락 거지란 표현에는 과장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이나 경제적 불안감을 콕 집어낸 조어 능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자산 가격의 급등이 노동의 상대적 가치를 지나치게 떨어뜨리는 일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주식과 부동산 거품 논란도 심상치 않다. 개인투자자들이 말 그대로 벼락 거지로 전락하지 않도록 연착륙 대책이 적절히 강구돼야 할 것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