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가족은 어디로 가는가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가족은 어디로 가는가

배승민 의사·교수

입력 2021-01-22 04:05

“한때는 서로 못 보면 죽을 것 같을 때도 있었는데….”

이런 드라마 같은 대사가 비단 연인과 부부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진료실에서 서로 독이 되는 말을 퍼붓는 가족들을 보면 한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기, 세상 최고의 부모였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때도 있다.

간만에 한가로웠던 지난 주말, 아이가 좋아하던 보드게임이 생각나 말을 꺼냈다가 “아니 그게 언제 적 얘기인데…” 하며 질색하는 반응에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문득, 자녀가 어릴 적 좋아하던 음식을 퇴근길에 사가니 “누가 요즘 그런 걸 먹어”라며 눈길도 주지 않아, 그 음식이 자기 신세 같았다는 환자의 말이 떠올랐다.

서로 성장하며 늙어가는 사이 일어나는 이런 변화들이 안타까워 나름 저항하거나 적응하려 애써보아도 무작정 노력만 한다고 멀어진 관계가 쉬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인간관계는 평생 서로가 노력해야 하는 것인데, 과거에 사이가 좋아 이심전심이었다고 방심하다가는 서로 엇나간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 시간을 꿰맞추기 어려워질 때가 오는 것이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런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느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자. 직장에서든, 집안에서든 나를 생각하고 배려해주지 않는 상대와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곤욕인지.

우리도 과거의 가족사진만 회상하다 현재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억은 고단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를 감당하게 해주는 든든한 나의 뿌리이지만, 그 뿌리만 보고 살면 때에 맞게 새잎을 내기도, 꽃이 피어나길 기대하기도 어렵다. 누구나 떠날 때는 혼자라지만 그때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채색할지는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기도 하다. 이 겨울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어떠한 봄을 맞이하게 될지 달라질 수도 있으니, 우리 가족은 어디쯤 있는지, 관심사가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엇나간 시간이 길어 너무 멀어지기 전에.

배승민 의사·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