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와인은 문학이다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와인은 문학이다

이원하 시인

입력 2021-01-27 04:05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술에 관한 책을 출간하자는 제안이었다.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책을 쓸 정도의 전문가는 아니라고 말씀드렸더니 나에게 전문성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일상에서 술을 즐기는 시인의 이야기를 써주면 된다고 했고 아예 술을 멀리하는 시인의 이야기여도 좋다고 했다. 나는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부랴부랴 술에 대한 나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나 처음 마셔본 술은 와인이었다. 프랑스인들이 치즈를 자주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이유가 와인을 마셔서라고 어디선가 주워듣고는 와인을 사다 마셨다. 치즈를 좋아하는 나에게 희소식인 셈이었다. 동네 와인가게에 가서 저렴한 와인을 사다 마셨는데 맛이 아주 시큼하고 씁쓸했다. 다이어트를 위한 술임에도 손이 가질 않았다. 그때부터 와인의 맛을 따지기 시작했다.

좋은 맛을 찾기 위해선 전문가 도움이 필요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나에게 와인가게 주인은 높은 가격대의 와인을 추천해주기보단 각각의 와인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어느 와인은 유럽에서 군인들이 자주 마시던 것으로 늘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주었다는 스토리를 품고 있었고, 어느 귀여운 이름의 와인은 포도농장에서 맛있는 포도만을 골라 훔쳐먹던 강아지의 스토리를 품고 있었다. 이런 각각의 스토리를 듣고 와인을 마시니까 와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훨씬 맛이 좋게 느껴졌다. 이젠 스토리가 없는 와인에는 손이 가질 않는다. 선물용으로 구매할 때도 스토리가 있는 와인만을 구매한다.

마치 책을 읽어나가는 것 같다. 와인가게는 서점과도 같은 곳이다. 하나의 와인이 품고 있는 스토리는 마치 지휘와도 같아서 와인의 맛을 앞지르며 압도한다. 와인을 어려워하는 이들도 와인 고유의 이야기를 들으면 와인을 좋아하게 되고 만다. 영화를 보거나,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스토리텔링의 중심에 놓인 한국인들이 와인을 사랑하는 이유다.

이원하 시인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