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바뀌지 않는 투톱, 서훈 정의용

국민일보

[특파원 코너] 바뀌지 않는 투톱, 서훈 정의용

하윤해 특파원

입력 2021-01-27 04:06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매우 무례하고, 신의를 내팽개친 기사 하나를 지난해 6월 17일 보도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한 다음날이었다. 조선중앙통신은 “남조선 당국이 15일 특사 파견을 간청하는 서푼짜리 광대극을 연출했다”면서 한국 정부의 대북 특사 파견 제안을 폭로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보내겠다고 밝힌 특사는 당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었다고 까발렸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뻔한 술수가 엿보이는 이 불순한 제의를 철저히 불허한다는 입장을 알렸다”며 자랑스러운 일처럼 전했다. 북한이 일부 탈북민들과 인권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 격분해 상식 밖의 행동을 저지른 것이다.

북한이 극비 방문을 거절했던 두 사람이 문재인정부의 대북 정책을 포함한 외교안보 정책을 다시 이끌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정의용은 외교부 장관으로 지명되면서 화려하게 컴백했다. 서훈은 문재인정부의 첫 국정원장을 마친 이후 곧바로 국가안보실장을 이어 맡으며 대북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서훈·정의용 쌍두마차에다 박지원 국정원장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까지 더해 문재인정부의 대북·외교안보 최고위 당국자들은 모두 남북대화에 적극적인 인사들로 짜였다. 문 대통령은 대북 정책에서 서훈·정의용 투톱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외교안보팀의 전체 라인업에는 소폭의 변화가 있었으나 문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는 서훈·정의용이 있었다. 임기 말을 향하고 있는 문 대통령은 서훈·정의용 투톱을 통해 위기에 빠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미국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고위 인사들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전략’을 들고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가 벌였던 ‘리얼리티 쇼’ 같은 북·미 대화는 끝났다.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들이 문재인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엔 역시 서훈·정의용이 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 정부가 북·미 대화의 돌파구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면서 “이와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 정부가 남북 대화에서 과속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안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북한 문제를 놓고 한·미는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현재 상황에서는 한국이 불리한 국면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제기된다. 서훈·정의용은 미국이 이미 파악한 카드인데, 바이든 행정부가 만들고 있는 ‘새로운 전략’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아직 베일 속에 있다는 것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도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지내 많이 알려진 인물이지만, 4년의 공백을 거친 뒤라 어떤 북핵 해법을 꺼낼지는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시간도 불리한 요소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말을 향하고 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일 취임해 앞으로 임기 4년이 오롯이 남아 있다. 한국 정부는 예측할 수 없는 북한과 계산기를 두드리는 미국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다. 북한을 설득하면서 바이든 행정부와 진정한 신뢰를 쌓는 두 가지 일을 해야 하는 처지다.

워싱턴에선 서훈·정의용 라인에 대해 긍정적인 얘기도 나오지만, 북한에 대해 지나치게 우호적이며 낙관적인 전망만 전한다는 비판도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서훈·정의용 투톱이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선 식상한 레퍼토리가 아니라 새롭고 유연한 접근법을 제안하길 기대한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