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석 칼럼] 확증편향의 함정

국민일보

[오종석 칼럼] 확증편향의 함정

입력 2021-02-03 04:20

자기 견해에 도움되는 정보만
취하는 ‘자기중심적 왜곡’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 더 기승

북한 원전 건설 문건, 김학의
전 차관 사건 등은 정치권이
정파적 이익 위해 활용하기도

내 편 옳고, 네 편은 틀렸다는
편향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역지사지의 지혜를 가져야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했고,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確證偏向)에 빠졌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이 지난달 22일 자신이 제기했던 ‘검찰의 재단 계좌 열람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었다고 판단한다”고 사과하며 발표한 자성의 글이다. 대표적 진보 논객으로 신뢰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던 유 이사장이 확증편향의 함정에 빠져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을 시인한 것이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자신의 견해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에는 신경을 쓰지 않거나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편향성은 의사결정 시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에서부터 나타난다. 다른 말로 자기중심적 왜곡(myside bia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턴가 확증편향에 빠져들고 있다. 2019년 ‘조국 사태’ 때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라졌던 이념적 갈등은 ‘무조건 내 편은 옳고, 네 편은 틀렸다’로 귀결된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의미도 없다. 특히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사실임을 확인시켜주는 정보만 찾고, 자기 생각에 반하는 정보는 무시한다. 동일한 출처, 동일한 내용의 정보를 반복해서 받아들임으로써 기존의 생각을 계속해서 강화하며 자기합리화를 한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정보가 버젓이 사실로 치부되기도 한다.

정치권이 정파적 이익을 위해 대중의 확증편향을 유도하고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북한 원전 관련 파일을 둘러싸고 불거진 정치적 논란도 확증편향의 일환이다. 국민의힘은 정부가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을 추진한 것 아니냐며 ‘문재인 대통령의 이적행위’라고까지 공세를 취하고 있다. 산업부가 재판 중인 사안임에도 불필요한 논란의 종식을 위해 1일 ‘북한 원전 건설 문건’ 관련 자료를 전격 공개했지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공개한 문건 보고서 첫머리에는 ‘향후 북한 지역에 원전 건설을 추진할 경우 가능한 대안에 대한 내부 검토 자료이며,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님’이라고 명시돼 있지만 야당은 국회 국정조사 필요성을 언급하는 등 계속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한다. 기저에는 문재인정부를 친북 정권으로 규정하고, 당연히 ‘북한 퍼주기’ 차원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을 것이란 강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 현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망이 촘촘한 상황에서 노트북 1개도 북한으로 반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 미국이나 국제사회 모르게 북한에 원전 건설을 추진한다는 것이 도대체 가당키나 하겠는가.

이에 대해 청와대나 여권에서 ‘색깔론과 북풍 공작 정치’라고 반격한 것도 확증편향의 한 측면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한·일 해저터널 검토에 대해서도 경제적 관점은 아예 논외로 하고 ‘친일 프레임’만 덧씌웠다. 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서면 논평에서 “한·일 해저터널은 일본 이익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에서 추진력을 얻지 못한 친일적 의제”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정청래 의원도 라디오 방송에서 “일본의 대륙 진출 발판을 마련하자는 거냐”고 비꼬았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도 확증편향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다. 이 사건의 본질은 성접대 등 뇌물수수가 있었다는 것이고,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등 노골적인 제 식구 감싸기가 행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불법 출국금지가 더 큰 문제로 부각되면서 그를 붙잡은 검찰은 악인이 돼 있고, 김 전 차관은 피해자가 돼 있다. 여론도 확증편향적 진영논리에 빠져 내 편, 네 편에 따라 한쪽만 보고 한쪽만 주장하며, 다른 쪽을 공격한다. 물론 출국금지 등과 관련해 절차적 불법은 있어선 안 되고, 반드시 수사를 통해 진위를 가리는 게 맞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본질이 흐려져선 안 된다.

다수 대중이 확증편향으로 깊은 함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면, 나와 다른 쪽에 적개심을 갖게 되고 사회는 골병이 든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를 갖고 확증편향에서 벗어나도록 모두가 노력해야겠다.

논설위원 js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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