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지키려 이란 탈출한 가족 “평범한 일상 사는 게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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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지키려 이란 탈출한 가족 “평범한 일상 사는 게 꿈”

난민 신분으로 한국서 두 번째 설 맞는 나림 압신씨 가족

입력 2021-02-0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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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난민인정을 받은 이란 국적의 나림 압신(가운데)과 아내 소냐, 딸 사이나가 지난 7일 경기도 부천 집에서 난민 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부천=신석현 인턴기자

지난달 중순부터 17일간 정육공장에서 손이 퉁퉁 붓도록 하루 11시간씩 쉬지 않고 일했다. 설을 앞두고 선물용 고기 주문이 폭증한 덕에 겨우 잡은 일자리였다. 고된 노동에 비해 받아든 돈은 적었지만 그마저도 감사했다. 최근 정육공장에서는 더이상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

이란에서 온 나림 압신(52) 이야기다. 압신은 아내인 소냐, 딸 사이나와 함께 2011년 이란을 탈출했다. 말레이시아를 거쳐 2019년 9월 한국에 들어왔고 한 달 뒤 난민 인정을 받으면서 국내 장기체류가 가능한 F2 비자를 받았다.

올해 압신의 가족은 한국에서 보내는 첫 설을 맞는다. 엄밀히 따지면 지난해 설에 이어 두 번째지만 가족과 함께 자유롭게 보낸다는 점에선 첫 설이다. 압신은 “지난해에는 외국인보호소에서 설을 보냈다. 외출이 불가능해 감옥에 갇힌 수용자처럼 보냈다”고 떠올렸다. 딸 사이나도 “우린 행복하지 못했다”고 했다.

압신 가족은 지난해 6월 정부 지원을 받아 작은 집으로 옮겼다. 다시 설을 맞는 지금 압신 가족은 행복해졌을까.

십자가가 놓여진 거실 장식장. 부천=신석현 인턴기자

7일 경기도 부천 압신의 집에서 만나 이렇게 질문하자 눈물부터 보였다. 18살이 된 사이나는 지금도 학교를 다니지 못한다. 압신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일해 모은 돈도 거의 바닥이 났다. 차라리 이란에 남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압신은 이란에 있을 때 영화와 다큐멘터리 음향감독으로 일했고, 아내 소냐는 대형 건설사에서 회계사로 근무했다.

그들이 이란의 풍족한 삶을 포기한 이유는 하나였다. 마음껏 교회에 다니고 싶어서였다. 압신은 아버지를 통해 기독교인이 됐다. 아버지는 압신의 여동생이 있는 영국에 갔다가 침례를 받은 뒤 가족에게 기독교를 전했다. 압신의 나이 25세 때다. 가정예배를 드리며 믿음 생활을 이어갔다.

그들이 망명을 결심한 건 2009년 6월 이란 대통령선거 이후다.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됐고 압신은 이를 규탄하는 시위대의 선봉에 섰다. 이란 비밀경찰이 그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신앙의 자유도 사라졌다.

“더이상 조국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딸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고 싶었어요. 4살 때부터 딸은 유치원에서 코란을 읽어야 했어요.”

2011년 압신의 남동생이 사는 말레이시아로 갔다. 8년간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도 포기하며 돈을 모았다. 더 나은 미래가 있는 나라로 가기 위해 참고 일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난민으로 받아줄 피난처를 요청했고 한국이 압신 가족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답을 들었다.

“한국은 언어 장벽 때문에 생각지도 않았어요. 영어권 국가로 가기를 원했지만, 한국행을 거절할 수 없었어요. UNHCR 관계자는 한국의 제안을 거절하면 난민 신청 자체가 5~10년 지연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고 했어요.”

2019년 9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땅을 밟았다. 6개월간 외국인보호소에 있으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마주하게 됐다. 난민법에 따라 사이나는 지역 내 일반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사이나에겐 소용없는 일이었다. 국제학교는 돈이 없어 들어갈 수 없었다. 영주권도 사실상 받기 어렵게 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외국인이 영주권을 받으려면 일정금액을 보유하거나 안정된 직장에 다녀야 한다. 그러나 은행에선 압신이 이란인이라며 계좌 개설을 거부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란이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으니 거절한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었다. 계좌가 없으니 직장을 구할 수 없고 돈도 벌 수 없었다.

외교부와 법무부 측은 “이란 국적의 사람에게 계좌를 만들어 주지 말라고 정부가 지시하지는 않았다. 은행이 자체적으로 한 게 아닌가 싶다”고 해명했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한국교회가 도움을 주려고 나섰지만, 실질적 해결책은 없었다. 소냐는 새벽이면 잠에서 깨어나 울었고 압신은 그녀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사이나도 마찬가지였다.

압신은 “유엔과 한국정부에 화가 많이 났지만, 지금은 모든 걸 아시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다 내려놓은 상태”라며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믿고 계속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압신 가족이 원하는 건 소박하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이다.

“어떤 일이라도 좋으니 가족의 생존을 위해 돈을 벌 수 있었으면 합니다. 고등학생인 딸이 수업을 받을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고요. 하나님은 길을 만드시고 인도하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부천=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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