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위기에 만난 하나님… “이젠 내일을 꿈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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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위기에 만난 하나님… “이젠 내일을 꿈꾸게 됐다”

탈북 과정에서 가족과 생이별 예주씨 스토리

입력 2021-02-19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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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탈북해 한국에 들어온 예주씨가 지난 8일 다니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예주씨는 올해 홍익대 회화과에 합격했다. 예주씨 제공

예주(26)씨는 한국에서 맞이한 3번째 설을 홀로 보냈다. 익숙해졌다 생각했지만, 가족이 보고 싶은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3년 전 예주씨는 휴전선 너머 북한 땅에 있었다. 북한에도 설 연휴가 있다. 3일을 노동 없이 쉰다고 했다. 최근 모처에서 만난 예주씨는 설 명절을 1년 중 유일하게 쌀밥을 먹는 날로 기억했다. 한국에선 매일 쌀밥을 먹을 수 있으니 매일이 설날 같다고 했다.

예주씨는 1995년 태어났다. 대기근이 덮친 ‘고난의 행군’ 시절이었다. 시장 바닥에 시체가 나뒹구는 걸 보며 자랐다. 늘 배가 고팠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어린 나이에 장사판에 뛰어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물장에서 바닥에 떨어진 생선을 주워 팔거나 복숭아씨 마늘 같은 것도 팔아봤다. 옷 꿀 등 팔 수 있는 건 다 장에 내놨다.

아빠가 돈을 벌러 중국으로 건너간 뒤로는 예주씨가 가장이 돼야 했다. 몸이 아픈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봤다. 그때 나이 18세였다. 예주씨는 장거리 장사를 뛰기 시작했다. 한 번 나가면 한두 달은 집을 비웠다. 이렇게 해야만 가족들이 옥수수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

아빠가 집을 떠난 지 3년 만에 연락해 왔다. 사실 아빠는 중국으로 돈 벌러 간 게 아니라 탈북해 한국으로 들어갔다. 예주씨만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빠는 중국으로 떠나기 직전 탈북 계획을 딸에게만 털어놨다. 아빠는 북한에 있을 때 새벽마다 몰래 라디오로 한국의 방송을 들었다. 방송으로 전해진 탈북자의 간증을 들으며 탈북을 꿈꿨다.

세월이 꽤 흘렀지만 예주씨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예주씨는 “탈북자가 북한에선 꿈도 못 꿨던 대학을 가게 됐단 얘기, 그분이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며 힘들수록 하나님을 붙잡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했던 얘기가 기억난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여서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탈북해 대학을 갔단 얘기는 귀에 꽂혔다”고 했다.

아빠는 가족들에게도 탈북을 권했다. 예주씨는 내일이 없는 북에서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느니 모험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아빠에겐 “나도 대학 가는 걸 꿈꿀 수 있는 남쪽에서 살고 싶다”고 얘기했다. 예주씨는 가족과 함께 국경을 넘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탈북을 돕던 중국 브로커의 변심으로 아빠가 중국 공안에 붙잡혔다. 가족들은 모두 북송됐고 예주씨만 A국으로 빠져나왔다. 막막했다. A국 한인 선교사와 연결돼 선교사집에 머물렀지만, 한동안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아빠가 잡혀가는 모습을 보며 누구도 믿어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이곳에서 본 십자가는 북에서 마귀의 표식이라고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던 것이었다.

선교사들의 환대에 예주씨의 경계심은 차차 누그러졌다. 한번은 선교사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불러줬다.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엄마에게도 듣지 못했다. 예주씨는 “선교사님들과 아침마다 성경 공부를 했는데 그분들이 말하는 하나님이 내게 ‘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예주씨는 가족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곳에서의 삶을 받아들였다. 어렸을 적 아빠의 라디오에서 들었던, ‘하나님을 붙잡으라’고 한 탈북자의 말을 따라보기로 했다. 의무적으로 했던 성경 공부도 열의를 갖고 임했다.

성경은 지금까지 예주씨가 알던 책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금껏 그가 몰랐던 진짜 인생, 존재의 이유를 깨우쳐 줬다. 그때까지 예주씨가 겪은 삶은 ‘호의 뒤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성경 속 예수는 그렇지 않았다.

예주씨는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다 보니 내 죄가 보였다”며 “죄인 중에 죄인인 날 구원하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에 눈물이 났다. 그리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예주씨는 그동안 남몰래 지었던 죄까지 모두 꺼내 회개했다.

우여곡절 끝에 예주씨는 홀로 한국에 들어왔다. 아빠 소식은 현지 소식통을 통해 간간이 듣고 있다. 그러나 북송된 가족 소식은 들을 길이 없다. 브로커를 통해 수소문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래도 예주씨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하나님을 붙잡으면 그가 도와주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주씨는 한국에 온 뒤 계획이라는 걸 처음 세워봤다. 일기를 쓰며 7개월 전부턴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말과 글로 표현 못 했던 것을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싶어서였다. 예주씨는 내친김에 홍익대 회화과에 원서를 넣었다. 감사하게도 올해 합격 소식을 받았다. 준비 시간도 짧아 기대도 안 했던 소식에 예주씨는 “오늘밖에 없던 제가 내일을 꿈꾸게 됐다”며 기뻐했다.

예주씨는 오늘도 열심히 내일을 준비한다. 하루 2~3개씩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엔 학원에 가서 미술을 배운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쓴 일기 밑에는 꼭 성경 말씀 한 구절씩을 남긴다. 최근에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말씀인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를 적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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