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다·롯·설교 듣던 5000명 군중… 성경 속 주인공 아닌 ‘아무개’에게서 그리스도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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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다·롯·설교 듣던 5000명 군중… 성경 속 주인공 아닌 ‘아무개’에게서 그리스도를 읽다

인문학은 성경을 어떻게 만나는가/박양규 지음/샘솟는기쁨

입력 2021-02-19 03:02 수정 2021-02-2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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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에스파냐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계신 그리스도’에 묘사된 마르다.(왼쪽 두 번째) 벨라스케스는 부엌일을 하며 굳은 표정을 한 마르다를 마리아보다 크게 그렸다. 샘솟는기쁨 제공

미국 인상주의 화가 존 싱어 사전트의 그림 ‘개스드’(Gassed)에는 흰 천으로 눈을 가린 한 무리의 군인이 등장한다. 적군의 독가스 공격으로 눈이 먼 이들은 위생병의 안내 아래 일렬로 행진하며 서로의 등짐을 잡고 야전병원으로 향한다. 이들 주변엔 독가스 공격을 받아 눈을 가린 전우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1919년 제작된 이 그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과 전투를 치른 영국군을 묘사한 것이다.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 속 전쟁영웅과 승전국을 장황하게 기록하지만, 전쟁 일선에서 큰 희생을 감내한 민초는 숫자로 간단히 표현한다. 사전트의 이 그림은 전쟁영웅의 들러리에 불과했던 민중을 집중 조명한 상징적 작품이다.

성경 속 이야기에도 주인공과 주변 인물이 있다. 출애굽기엔 모세와 여호수아만 나오지 않는다. 이들을 따라 광야로 나선 이스라엘 백성 200만명도 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와 열두 제자뿐 아니라 이들 곁에서 설교를 듣는 5000여명의 대중도 등장한다. 여기서도 주인공은 이름과 행적이 남지만, 군중 속 ‘아무개’는 숫자로만 등장한다.


영국 에버딘대에서 신구약 중간사로 박사 과정을 수료한 저자는 사전트처럼 영웅이 아닌 ‘아무개의 시선’에 주목한다. 성경 속 장삼이사의 입장에서 공감을 시도할 때, 성경을 문자가 아닌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인문학적 시선으로 성경 읽기’를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문학적 시선은 인문학 지식이 아닌 ‘한 인간을 향한 시선’이다. 책에서 저자는 성경뿐 아니라 동서양 문학과 예술작품을 넘나들며 작품 속 이야기의 주변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고 이들의 관점으로 현 세태를 읽어내는 방법을 소개한다. 성경 속 아무개의 사례를 교훈 삼아 현대인이 어떻게 성경을 현실에 적용할지도 안내한다.

롯은 창세기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함께 언급된다. 악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 사는 그는 현지 풍속과 달리 사회적 약자를 환대한 의인으로 묘사된다. 그의 관대함과 아브라함의 기도 덕에 멸망의 도시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지만 롯의 일가족은 정작 떠나길 주저한다. 소돔과 고모라는 수자원이 넉넉하고 문명이 발달한 최첨단 도시였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떠나는 이들의 모습이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딸들과 소돔을 탈출하는 롯’에 잘 그려져 있다. 당시 독일에서 유행하던 터키산 터번과 모피코트 차림으로 그려진 롯은 소금기둥이 된 아내를 뒤로하고 고급 드레스를 입고 옷감과 보석상자를 든 두 딸을 이끌고 나선다. 피난민 행색으로 보기 어려운 차림을 통해 이들이 부와 안정된 삶에 미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창세기의 주변 인물인 이들에게서 현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본 저자는 말한다. “롯에게 하나님이 자비를 베푼 결과는 소돔에서 호의호식하라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소돔을 벗어나는 게 축복이었다. 진정한 가치가 위협을 받는다면 ‘여호와의 동산처럼’ 풍족한 곳이라도 떠나는 것이 축복이며 그것이 우리 선택의 기준이 돼야 한다.”

저자는 선지자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850명 앞에서 기적을 일으킨 ‘갈멜산 사건’에서도 아무개의 행적을 살핀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적을 간구하기 전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번제물 위에 바닷물을 3차례 붓는 일에 인원을 동원했다. 바다에서 산까지 물을 긷는 고된 노동을 오랜 시간 묵묵히 해낸 아무개를 향해 저자는 말한다. “갈멜산 승리의 비결은 엘리야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갈멜산과 지중해를 세 차례 왕복하던 아무개의 이름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성경이 그들을 기억했다는 것이다. 그것만큼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예수의 말씀을 듣던 마리아 대신 손님 대접에 힘쓴 마르다, 12년간 하혈로 고통받던 여인…. 성경 속 아무개의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하나의 결론을 얻는다. “주변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고,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드러내야 할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팬데믹 시대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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