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두 세계 사이에서 선택하라

국민일보

[바이블시론] 두 세계 사이에서 선택하라

유장춘 (한동대 교수·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입력 2021-02-19 04:03

“극과 극이 존재하는 두 개의 다른 영역이 함께 돌아가는 세상”. 헤르만 헤세는 소설 ‘데미안’에서 10살 소년 싱클레어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는 아빠와 엄마로 대표되는 밝은 세상이다. 그것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사랑과 질서가 골격을 이루는 모범적 세상이다. 또 하나는 혐오와 불안이 깃든 어둠의 세상이다. 그것은 음모와 의심, 냉소와 추문 그리고 유령 이야기와 같은 섬뜩하고 요사스럽고 수수께끼와 같은 일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두 극단의 세계는 그 경계가 아주 가까웠고 모호했다.

오늘의 우리 사회를 보면 두 세계가 완전히 겹쳐 있다. 정치인, 법조인, 종교인, 관료, 언론인, 학자, 기업가들…. 그들은 법과 사회 정의와 시대적 대의를 외치면서 밝은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그들은 어두운 골방에서 부정한 계약을 맺고 음모를 꾸미며 사회를 호도하는 교묘한 메시지들을 퍼뜨린다. 하나는 밝히 드러나는 세계지만 다른 하나는 깊이 숨겨지는 세상이다.

안타깝게도 날이 갈수록 이 어두움의 영역이 더 강력하게 세상을 지배하고 염치없이 그 마각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들이 저지른 온갖 추행들은 아주 교묘하고 단호하게 방어하면서도 상대에 대해선 조그마한 문제까지 들춰내 침소봉대하고 확대 재생산한다. 서로가 그렇게 하다 보니 세상은 언제나 어두움이 지배해 온 것처럼 세뇌되고, 모든 사람은 어둠의 자식들인 양 혐오하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한다. 매스컴은 하수도같이 세상에 오물을 뿜어내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세상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 하나의 사건 앞에서도 우리는 빛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고 어둠의 세계를 주목할 수도 있다. 어떤 세계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건의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 어두움의 세상은 주목할수록 커지고, 이야기할수록 강해지고, 생각할수록 두려워져서 세상을 지배해간다. 그러나 어두움의 세상에서 빛의 세상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어둠은 힘을 잃고 형체 없이 소멸하고 만다. 이 어두움의 세상을 걷어내고 빛의 세계를 주목하고 새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어둠을 바라보는 눈을 거두어 빛의 세계를 바라보고 이야기해야 한다.

어떤 법조인이 음모와 술수로 사람에게 죄를 덧씌워 억울하게 처벌받게 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 일이라도 우리는 그 어두운 행위에 주목하지 말고 그 사실을 밝히고 진실을 찾아내 개혁을 주도했던 용감한 일들을 주목해야 한다. 자기 이익을 위해 주가를 조작해 막대한 이익을 차지한 후 엉뚱한 사람들에게 큰 손해를 입힌 기업인이 있었다. 우리는 그 어두운 부분을 주목하기보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건을 밝혀내고 법의 심판 아래로 끌어냈던 사람들의 정의로운 활동을 더 크게 말하고 화제로 삼아야 한다. 어떤 교수가 자신의 신념을 공개함으로써 해직당한 일이 있었다. 그러한 사건 속에서도 은밀한 모략과 박해를 증오하고 어떻게 동일한 방식으로 복수하느냐보다는 그 사람이 어떻게 그 고통의 시간을 극복하고 학문과 화해와 용서를 이뤄갔으며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도왔느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우리가 찾는 것은 빛나는 별이다. 십자가의 노정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유다의 배신보다는 예수의 사랑이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기도는 그 명랑하고 자유로운 진리의 빛이 지배하는 세상이 이곳에 이뤄지도록 염원하는 기도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란 말씀은 그 세계를 소유하기 위해 싸우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를 향해 나오라고 말씀하신다.

유장춘 (한동대 교수·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