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규제는 커녕 더 푸는 TV 술 광고… 청소년들에 술 권하는 사회

국민일보

[And 건강] 규제는 커녕 더 푸는 TV 술 광고… 청소년들에 술 권하는 사회

[2021 음주 폐해 리포트] ④ 진화하는 주류 광고 <끝>

입력 2021-02-23 04:02 수정 2021-02-23 10:18
주류 광고 옥죄는 세계 추세에 역행… 법망 피해 매년 증가 SNS로 이동
포괄적 규제로 법제도 강화 목소리… 유명인 모델 청소년에 그릇된 인식
가상·간접광고 금지 계속 유지 강조

최근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주류 광고들이 등장하면서 규제 강화 목소리가 높다. 유명 여가수가 방송 기준인 17도에 살짝 못 미치는 소주 광고에 출연한 장면. 아래 사진은 식품업계가 주류업계와 협업해 내놓은 라면과 술의 콜라보 광고. 이에 보건복지부는 주류 광고 주체를 주류 제조·수입·판매업자로 명확히 규정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오는 6월 30일부터 시행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제공

#1. 지난해 9월 10일 오후 11시20분대 TV조선과 MBN, YTN, tvN, OCN에 방송된 술 광고 장면. 걸그룹 멤버가 소주병을 들고 “팽팽하다 체력봐라, 청춘맞나 청춘맞다” 같은 노래를 부른다.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기준 7호(주류 판매 촉진 광고노래 방송 불가)를 위반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권고’ 조치가 내려졌다. 하지만 해당 광고는 이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에선 계속 송출됐다. 디지털 매체의 광고 위반에 대한 법적 제재 근거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2. 종합편성채널(종편)이나 케이블채널에는 오후 10시 이후 심야 시간대에 유명 여가수의 16.9도 소주 광고가 자주 등장한다. 현 법령상 알코올 도수 17도 이상 주류의 광고 방송은 금지돼 있다. 이에 주류 회사들이 17도에 살짝 못 미치는 저도주들을 잇따라 출시하며 방송 광고 규제를 교묘히 피해 가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두 사례는 점점 진화하는 주류 광고의 실상을 보여준다. 미디어 등을 통한 술 광고 노출은 청소년 음주 시작을 앞당기고 음주 소비를 촉진한다는 다수의 연구결과가 보고돼 있다. 알코올은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IARC)가 분류한 ‘1군 발암물질’로 과음·폭음에 따른 건강 폐해는 매우 크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주류 광고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지만 국내에선 음주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로 법규제가 느슨하다. 똑같이 1군 발암물질로 분류된 담배는 TV방송 광고를 할 수 없고 흡연 장면조차 등장할 수 없지만 술은 광고가 가능하고 음주장면 역시 나온다.

흡연보다 느슨한 술 광고 규제

22일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하 개발원) 주류 광고 모니터링에 따르면 TV방송을 통한 술 광고 송출은 2017년 37만4000여건, 2018년 48만6000여건, 2019년 68만5700여건, 지난해 52만6000여건(10월 말 기준)으로 급증했다. 라디오 방송, 신문·잡지 등 인쇄매체를 통한 주류 광고는 감소 추세다. 근래엔 규제 무풍지대인 IPTV(인터넷방송)나 DMB 등 뉴미디어, SNS나 유튜브 같은 통신매체로 술 광고가 옮겨가고 있다.


주류 광고 법 위반 사례도 TV에서 유일하게 증가했다. 2017년 1건, 2018년 9건, 2019년 14건, 지난해 18건의 광고 기준 위반이 적발됐다.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위반 사례는 2017년 358건, 2018년 631건, 2019년 437건, 지난해 299건으로 방송 보다 훨씬 많았다. SNS나 유튜브 등은 단속 인력 부족과 법규 미비로 규제가 쉽지 않다.

개발원 오유미 건강증진사업실장은 “전체 주류 광고 법 위반율은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이나 TV의 경우 위반 건수가 늘고 있으며 현행 주류 광고 금지 수준도 매우 제한적”이라면서 “담배 광고는 원칙적 금지이고 제한된 범위에서만 허용하는 반면 주류 광고는 원칙상 허용하되 매체나 표현 등 일부에 한해서만 금지하는 등 규제의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또 “매체별로 적용할 수 있는 주류 광고 기준의 세부 내용이 상이하고 기준이 적용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방송과 SNS, 유튜브 등 매체를 아우르는 포괄적 규제 방향으로 법제도가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주류 광고의 또 하나 문제는 연예인, 유명인을 모델로 활용해 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앳된 여성 가수나 배우가 등장해 ‘순수’ ‘발랄’ ‘깨끗함’ ‘건강함’ 등을 표현함으로써 청소년에게 술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은 25세 이하 주류 광고 모델 기용을 금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미성년자만 아니면 할 수 있다. 또 프랑스와 스웨덴은 TV, 라디오 등에서 주류 광고를 할 수 없고 노르웨이는 매체 관계없이 주류 광고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5도 이상 주류 광고를 할 수 없다. 핀란드는 SNS를 통해 공유되는 주류 광고를 금지한다.

이해국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외국에선 대부분 한물 간 배우들이 술 광고를 하며 프랑스에선 연예인이 술 광고를 못한다. 아이돌 등 젊은 연예인이 술 광고에 나오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상규 한림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서구에선 유명인 스스로 술 광고 모델로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술 광고에 나가야 톱 모델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연예인들의 자성과 자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술 권하고 나선 방통위

이런 가운데 앞으로 안방에서 노골적인 술 광고를 더 많이 접하게 될 전망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오는 6월부터 TV방송에서 그나마 막혀있던 17도 미만 주류에 대한 가성·간접 광고(PPL·프로그램 속에 특정 술 광고)를 허용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최근 입법예고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상 그간 오후 10시~오전 7시에만 주류 광고가 가능했으나 방송법으로 가상·간접 광고는 금지돼 왔다.

개발원 관계자는 “주류의 가상·간접광고 허용은 청소년 음주와 미디어 속 음주 장면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주류 광고 허용 시간대에도 청소년 시청 가능한 프로그램이 많고 재방송이나 다시보기 서비스 등이 활발한 매체 특성상 아동·청소년이 주류 광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방통위는 주류 광고 규제 시간대(오전 7시~오후 10시)에는 해당 가상·간접 광고가 송출되지 않게 프로그램을 편집 방송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나 유튜브 등에서는 편집없이 송출될 개연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해국 교수는 “광고임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직접 광고와 달리 드라마나 예능에 자연스럽게 삽입된 술 PPL은 화면 속 등장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는 정도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음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청소년, 젊은 여성에게 유해한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상규 교수도 “주류 광고 등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세계적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다음 달 3일 시행령 입법예고 만료를 앞두고 주류의 가상·간접광고 금지 정책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방통위에 전달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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