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미국판 내로남불

국민일보

[한마당] 미국판 내로남불

손병호 논설위원

입력 2021-02-23 04:10

미국 엘리트 정치인의 부적절한 처신 때문에 현지 사회가 떠들썩하다. 공화당의 차기 대선주자 중 한 명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그 장본인인데, 일부 비뚤어진 우리나라 정치인들한테 익히 봐 왔던 모습이라 씁쓸하다. 특히 ①어처구니없는 잘못을 한 뒤 ②엉뚱한 해명으로 더 큰 공분을 사며 ③거짓말인 게 탄로나 뒤늦게 사과하지만 ④과거에 똑같은 사례로 남을 비판한 사실도 밝혀져 ‘내로남불’이란 비난을 받는 것까지 꼭 빼닮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크루즈 의원은 지역구인 텍사스주에 겨울 폭풍이 몰아쳐 300만 주민이 단전과 단수로 고통받고 있던 지난 17일(현지시간) 멕시코의 따뜻한 휴양도시 칸쿤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이에 주민들이 발끈하자 “아이들이 여행을 가고 싶어 했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해명이 오히려 분노를 더 키웠고, 크루즈의 아내가 지인에게 ‘텍사스 집이 너무 추워 일요일까지 칸쿤에 다녀오려 한다’고 문자를 보낸 사실까지 드러났다. 비난 여론이 더 거세지자 크루즈는 결국 급거 귀국해 “명백히 잘못했다. 사실 비행기를 타자마자 후회했었다. 나한텐 부모 역할도 있지만 텍사스를 위해 싸울 책무도 있다”고 뒤늦게 사과했다. 그런데 크루즈가 2개월 전 코로나19 때문에 여행자제령이 내려진 멕시코를 몰래 여행한 텍사스 오스틴 시장을 ‘완전한 위선자’라고 맹공격했다는 점이다. 멕시코는 지금도 여행자제령이 내려진 곳이다. 이에 주민들은 크루즈야말로 진짜 위선자라며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여의도 주변에서는 정치인들이 커리어를 망치지 않으려면 4가지를 꼭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입조심(막말), 손조심(성추행), 손가락조심(SNS 실수), 술조심(취중 실수)이 그것이다. 그런데 크루즈의 케이스를 보면 2가지를 더 보태야겠다. 타이밍조심과 변명조심이다. 때를 잘 가려 행동한다면 ‘3·1절 골프’나 ‘5·18 술판’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테고, 잘못한 일을 제때 제대로 사과한다면 맞을 매도 덜 맞을 것이다.

손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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