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검수완박’, 국민마저 패싱할 건가

국민일보

[박정태 칼럼] ‘검수완박’, 국민마저 패싱할 건가

입력 2021-02-23 04:20

여권,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위해 수사청 신설 일방적 추진
권력기관 개혁 국정과제에도 없던 팬덤 정치의 분풀이 산물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 두 달 만에 사법체계 근간 또 흔들어
수사 공백·범죄 대응력 약화 뻔한데 사회적 논의는 없어
검찰총장 민정수석 패싱 이어 국민과도 불통…
밀실 논의 통한 졸속 입법 당장 멈춰야

여권발 검찰 개혁 시즌2의 핵심은 이른바 ‘검수완박’이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말한다. 이를 위해 여권 내에선 수사청(가칭) 설립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발족과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에 남겨 놓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직접 수사권마저 수사청으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여권 뜻대로 수사청이 설립되면 수사는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수사청이 담당하고 검찰은 영장청구권을 보유하면서 기소와 공소 유지에만 전념하게 된다.

수사청이란 제3의 기구를 만드는 것은 당초 문재인정부의 권력기관 개혁 국정과제에 없던 일이다. 그렇기에 지난해 12월 29일 더불어민주당에 검찰개혁특별위원회가 발족될 때만 해도 ‘검수완박’은 검찰 엄포용으로 생각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몰아내기 위한 징계가 무산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완패로 끝나자 분풀이 용도로 제기하는 것으로 비쳤다. 그날 검찰청을 없애겠다며 국회에 발의한 ‘공소청 법안’ ‘검찰청법 폐지 법률안’도 강경파 의원들이 홧김에 만든 법안이려니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1월 초순 극렬 친문 단체의 서약서 작성 압박으로 급진전됐다. “2021년 상반기 내에 ‘검찰 수사권의 완전 폐지’를 위한 법률안을 통과시켜 문재인정부 임기 내에 시행될 수 있도록 국회의원으로서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을 포함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임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서약합니다.” 이런 서약문에 여당 의원들이 서명하며 충성 경쟁을 하기 시작하면서 발동이 걸렸다. 지난 8일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법안이 발의된 건 바로 이 ‘팬덤 정치’의 산물이었다. 최근 당내 검찰개혁특위가 당론 형태의 수사청 법안을 마련해 6월 법제화를 목표로 한다는 게 확인되면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문제는 올해가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의 원년인데 너무 서두른다는 거다. 검찰의 수사권이 6대 범죄로 제한되고 나머지 일반 범죄는 경찰이 수사하는 체제로 바뀐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국가 형사사법체계의 틀을 바꾸겠다니 황당하기만 하다. 게다가 공수처와 국수본은 조직 구성조차 완비되지 않은 상황이라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향후 세 조직의 상호 견제와 협력을 지켜보고 운영과 통제 등에 문제점이 없는지를 파악한 뒤 제도 안착을 도모하는 게 순리다. 그렇지만 조급증에 걸린 여권은 이런 시스템 점검은 안중에도 없는 분위기다. 수사청 신설이 국수본을 두 개 만드는 것과 뭐가 다른지도 모르겠다.

그간 무소불위 검찰의 폐해를 봐왔던 만큼 수사와 기소 분리는 궁극적으로는 가야 할 길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중장기 과제로 삼는 게 맞는다.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마저 빼앗아 수사청에 준다면 수사청이 궤도에 오를 때까지 수사 공백은 불가피하다. 1954년 검사의 수사권과 기소권 보유를 명문화한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67년간 도제식으로 쌓여온 게 검찰의 수사 역량이다. 이를 한순간에 박탈하면 고도의 수사기법을 요하는 부패권력, 경제권력 등의 지능형 범죄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질 게 뻔하다. 이는 국민 피해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수사청 도입 유예기간을 1년 뒀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2018년 1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 권력기관 개혁안을 발표할 당시 “이미 검찰이 잘하는 특수수사 등에 한해 직접 수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최근엔 페이스북을 통해 “지금이야말로 향후 100년을 갈 수사구조 개혁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수사청을 밀어붙이라고 주문한다. 이율배반적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근시안적’ 검·경 수사권 조정은 뭐 하러 했는지 묻고 싶다. 그 사이 상황이 변한 거라곤 2019년 하반기부터 검찰이 정권 비리 수사에 나섰다는 것 외엔 없다. 한풀이식으로 검찰을 공중분해 하겠다는 저의가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수사청은 밀실 논의를 통해 졸속 추진할 게 아니다. 공수처 도입 때도 논란이 됐지만 수사청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수사청에 대한 통제 시스템, 인권 보호 장치 등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당연히 선행돼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극렬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를 한다면 국정 운영의 책임을 저버린 것과 진배없다. 검찰총장, 민정수석에 이어 국민마저 ‘패싱’할 건가.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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