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정말로 그 끝은 창대하리라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정말로 그 끝은 창대하리라

이원하 시인

입력 2021-02-24 04:06

생각해보면 인생은 그랬다. 쉽게 가려고 하면 항상 그 끝이 안 좋았다.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해 고난을 묵묵히 견뎌냈을 때만 그 끝이 창대했다. 서른이 넘어서야 이것이 인생의 이치라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쉬운 길을 선택하지 못하겠다. 어려운 길을 자진해서 선택하는 자신을 지켜보게 된다. 소설을 쓰기 위해 6개월간 원양어선에 오른 김언수 소설가에 비하면 내가 선택한 고난은 작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고난으로 몸을 던지려고 노력한다.

한때 배우가 되고 싶어 연기학원에 다닌 적 있었다. 수업이 없는 날이면 매일 연습실에 갇혀서 대본을 외우고 또 외웠다. 연기학원에서 암기로는 나를 따라올 학생이 없었다. 하지만 배우가 되는 길은 대본만 외워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피부와 몸매를 가꿔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운동과 식단 조절이 필수였는데 그때 나는 어려운 길보다 쉬운 길을 택했다. 평소에 마음껏 먹다가 오디션 직전에만 쫄쫄이 굶은 것이다. 결국 피부는 망가졌고 살은 빠질 리 없었다. 매번 오디션에 낙방했다. 쉬운 길로 가려다가 그 끝이 창대하지 못했다.

미용사를 꿈꾸며 큰 미용실에 입사했을 때도 그랬다. 하루 근무시간도 긴데 거기에 연습까지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결국에 쉬운 길을 택하면서 연습을 빼먹기 시작했다. 그때 나이 고작 22살이었고 일보다 노는 게 훨씬 좋았고 결국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어려운 길이 좋다. 쉬운 길로 가려다가 실패의 맛을 많이 맛봐서 그렇다. 내가 말하는 창대한 끝은 재벌이 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소소한 일에서도 많다. 식물을 기르는 일만 해도 숱한 실패를 경험하게끔 만들고 고난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모든 과정을 이겨내면 열매나 꽃을 선물한다. 이러한 인생의 이치를 알기에 오늘도 나는 고난 속으로 자진해서 몸을 담근다. 고난에 몸이 담기면 열탕에 들어온 것처럼 뜨겁지만 마음만은 아주 편안해진다. 나이가 든 것 같다.

이원하 시인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