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스필오버 효과

국민일보

[청사초롱] 스필오버 효과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입력 2021-02-24 04:05

‘스필오버(spill-over) 효과’는 특정 지역에 나타나는 현상이 다른 지역에까지 퍼지거나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일본 여행객이 명동에서 호텔을 잡지 못하면 강남이나 홍대로 진출하는 효과이다. 또 오늘의 히트작이 어제의 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일컫기도 한다. 한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신뢰가 형성되면 그 브랜드에서 생산된 상품을 무조건 신뢰하는 현상이다.

스필오버 현상을 잘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가 2013년 여름에 발생했다.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필명의 작가가 ‘쿠쿠스 콜링’이라는 책을 펴냈다. 비평가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두 달 동안 겨우 1500권만 팔렸다. 그러다 그해 7월 15일에 이 책의 실제 저자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인 조앤 K 롤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첫날에만 판매가 15만6866%나 급등하면서 단숨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한 달 뒤에 이 책의 판매 부수는 110만권에 이르렀다.

이 사례를 ‘콘텐츠의 미래’(리더스북)에 소개한 바라트 아닌드는 “콘텐츠 비즈니스는 언제나 콘텐츠 자체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려 한다. 그런데 이것이 함정이다. 콘텐츠의 힘은, 네트워크 효과의 강력함을 지닌 사용자 연결의 힘에 점차 눌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연결의 힘’이라는 것이다.

연결의 힘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충성고객의 규모에 달려 있다. 그런데 고객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이미 생산자이다. 직접 생산자가 아닐지라도 “천재 주변에 있으면서 함께 작품을 창조하는 사람”, 즉 ‘세컨드 크리에이터’라 볼 수 있다. 그들은 자기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반열에 올라가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서평을 쓰거나 유튜브에 소개하면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졸지에 쪽박을 찰 수도 있다.

출판시장에서는 모든 분야의 경쟁이 격화돼 블루오션은 찾아보기 어렵다. 세스 고딘은 이미 오래전에 “니치독자들을 겨냥한 버티컬 시장을 개발해야 한다”고 예언했다. 포털(Portal)의 시대는 지고 보털(Vortal)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그의 지적은 현실이 되었다.

보털은 ‘수직’이라는 의미의 ‘버티컬(Vertical)’과 ‘포털’의 합성어이다. 포털은 폭넓은 사용자층을 대상으로 일반적인 정보전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에 보털은 수직으로 깊게 우물을 파듯 특정 사용자 집단을 위한 전문적인 정보제공이나 실질적인 전자상거래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출판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출판사들은 민음사나 문학동네, 창비 등 주로 문학출판사들이다. 작년에 모두 크게 매출을 늘린 이 출판사들은 서브컬처를 다루는 임프린트를 만들어서 장르문학이라는 망망대해에 낚싯대를 던져놓고 시장 변화를 예의 주시해왔거나 청소년 대상의 장르문학을 히트작으로 꾸준히 펴내면서 독자의 성향변화를 파악해왔다. 카페나 북클럽을 만들어 독자와의 연결을 꾀하거나 유튜브에도 남보다 빨리 진출하면서 멤버십 비즈니스를 추구해왔다.

코로나19라는 위기마저 기회로 만들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들 출판사의 자신감 때문일까? 최근 한국문학은 영미권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콧대가 센 일본에서마저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허블)을 높은 선인세로 판권을 확보했다. 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창비)는 일본서점대상에 선정되면서 1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21세기 들어 여러 악재로 고전만 하던 한국문학에 드디어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다만 초연결사회에서 독자와의 연결을 더 확실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