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신학생에 이름뿐인 전도사… 개척 생각하니 ‘막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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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신학생에 이름뿐인 전도사… 개척 생각하니 ‘막막’

목회사명 넘어 소명을 붙들라 <4>

입력 2021-02-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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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서울 신생중앙교회 목사(뒷줄 오른쪽)가 1977년 11월 유창배 장로(뒷줄 왼쪽)의 자택에서 개척예배를 드리고 사진을 촬영했다.

신학교 3학년 어느 날 목사님이 부르셨다. “이제 졸업 후를 생각해야지. 시골이 어떻겠나. 서울에서 목회하려면 성경 지식은 물론 개척 자금도 많이 필요하네. 자네는 다른 졸업생에 비해 나이도 있으니…. 큰 교회 부교역자로 가기도 힘들 테니 시골 동네개척을 생각해 보게.”

목사님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자꾸 듣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시골 목회가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신학교 동기의 부친이 담임목사로 계신 인천 모 교회에서 집회 초청이 들어왔다.

교회건축이 중단돼 천막에서 예배드리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벽은 있는데 천장이 없었다.

목사님이 천장도 없는 교회 한쪽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만감이 교차했다. 개척이 힘들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훨씬 두려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골 목회’ ‘개척’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지만, 그때부터 마음이 답답해졌다. 집회 후 숙소로 돌아와 내게 복음의 확신을 줬던 요한복음을 펼쳤다.

1장, 2장까지 눈으로 읽다가 3장부터는 큰 소리로 통독했다.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가는 장면이었다. 문득 내가 느끼는 두려움과 걱정은 육에서 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기도하다가 졸음이 밀려왔다.

눈꺼풀이 무거워 안간힘을 쓰는데 그때 빛이 점점 글씨가 돼 입체적으로 선명해졌다. ‘신생중앙교회’. 그리고 주변을 보여 주시는데 서울 석관동이었다.

가난한 신학생, 아직 섬기는 교회도 없어 이름뿐인 전도사. 하지만 마음의 확신은 절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마음속에 개척에 대한 확신이 확고해져 갔다. 석관동은 1977년만 해도 환경이 열악했다. 동네 한복판에 커다란 연탄 공장이 있어 1년 내내 연탄재가 날렸다.

버스 종점에서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매연을 뿜어내고, 공장과 철길, 밭, 쓰레기 처리장에는 재건대(넝마주이)가 다녔다. 우범지대라는 말이 어울리는 삭막한 동네였다.

교인도, 교회도 없는 상황에서 첫 설교를 준비했다. 그리고 며칠 후 개척교회의 성도가 되겠노라 결심하신 성도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드디어 1977년 11월 20일 추수감사절에 석관동 한복판에 신생중앙교회가 세워졌다.

한 성도의 가정에 모여 10여명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다. ‘목회에 어떤 고난이 와도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구하겠다.’ 이런 다짐을 지키기 위해 한 푼의 지원도 받지 않았다.

어린이 책상을 강단 삼아 ‘하나님과 함께하는 교회’(창 28:10~22)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첫 설교를 마치자마자 곧장 삼각산기도원으로 올라가 소리쳐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교회가 이렇게 많고 훌륭한 목사님들이 많은데 무능한 저, 부족한 저를 부르시고 교회를 설립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에게 사명을 가르쳐 주십시오. 어떤 목회를 해야 합니까.”

한참을 그렇게 울며 기도하던 중 마음속에 울림이 있었다. “세상을 보라.” 고개를 들어 세상을 내려다보니 많은 사람이 뒤엉켜 우왕좌왕하는 거리의 모습이 보였다. 갈 길을 잃은 듯 두리번거리는 사람, 서로 삿대질을 하며 싸우는 사람, 곁에 있는 사람의 옷자락을 붙들고 원하는 방향으로 잡아끄는 사람, 아예 길에 앉아 울고 있는 사람까지 하나같이 성경을 든 성도들이었다.

“하나님, 왜 저렇게 성도들이 우왕좌왕합니까.” “오늘날 목사들이 성도에게 ‘은혜받으라’고 하고, 은혜받으면 더 가르치지 않고, 그들을 때리기만 하니 상처받아 헤매는 양들이다. 너는 그 양들을 잘 먹이라.”

다시 아래를 보니 여전히 실랑이를 벌이고 아우성치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님 저들은 또 왜 저렇게 다닙니까.”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대신 다른 것들을 강조해서 그렇다. 너는 상처받은 양을 먹이고 치라. 나를 써먹는 자가 되지 말고 쓰임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갈 길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반드시 쓰임받는 자가 되겠습니다. 저를 원대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뜻을 알게 하시면 강단에서 제 지식, 제 생각 섞지 않고 오직 아버지께서 주시는 대로만 전하겠습니다. 나는 아무것 없어도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나는 없어도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 길로 내려와 ‘말씀과 성령으로 능력 받아 사랑으로 역사하는 교회’를 표어로 잡았다. 그리고 ‘예수님을 가르치고, 예수님을 보여 주고, 예수님을 닮게 하자’를 평생의 기도 제목으로 삼았다.

그 후 시간 날 때마다 삼각산에 올라가 기도하며 성령 충만해지면 즉석에서 설교도 준비하고 소나무를 청중 삼아 설교연습도 했다. 휘영청 밝은 달밤에 설교 연습하는 날은 많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년, 청년, 학생들이 출석하며 외형상 교회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김연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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