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얼음귀신과 의료산업

국민일보

[빛과 소금] 얼음귀신과 의료산업

전정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입력 2021-02-27 04:02

우리 동네 한 가정의원 의사는 ‘허준’ 또는 ‘슈바이처’로 불린다. 신묘한 의술 때문에 그리 붙은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내원자를 돌보기 때문인 듯싶다. 그는 무엇보다 내원자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다. 당연히 문진 시간이 길어진다. 노인들의 얘기를 공감하며 위로를 건넨다. 간호사들도 조급함이 없다. 그렇게 진료를 받았더라도 약이나 주사제 처방 등이 필요치 않으면 치료비가 없다. 내원자들이 정말 그냥 병원 문을 나서도 되는지 주춤주춤한다. 그 병원에서 인근 큰 병원에 가 MRI 촬영을 권유받았던 지인은 세 번이나 진찰받았는데도 진료비 내라는 얘기가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과잉 진료와 처방 없이 그냥 나온 이들이 적잖다.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의료 현장의 노고와 그 시스템의 우수성이 이슈가 되곤 한다. 한국의 건강·의료 수준은 ‘국뽕’ 소리를 들을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감기 들었다”라고 표현한다. 병에 ‘들었다’ ‘나았다’라고 한다. ‘든다, 난다’ 표현은 병을 하나의 영적인 주체로 인식한 탓이다. 1960,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무당이 굿하는 경우가 심심찮았다. 1884년 선교사 앨런에 의한 의료선교가 시작됐어도 조선은 민간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민간의료 행위는 주술에 가까웠다. 영적 주체, 귀신의 주체가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니 말라리아 환자를 철교 아래 매달아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 산 뱀을 환자의 목에 기습적으로 감아 놀라게 해 병을 물리치는 행위가 이뤄졌다(1927년 경북 경찰부 보고). 전염병은 무엇보다 힘센 관청을 무서워하니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나 엽서를 태워 재로 먹으면 낫는다거나, 우표 세 장을 등에 붙이면 낫는다는 미신도 유행했다. 샤먼 의술은 전염병 환자 가족이 어린아이 장기를 적출하는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치통에는 묵은 무덤의 인골을 파서 씹기도 했는데 이 또한 영혼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전염병, 즉 돌림병은 척화·배일 사상과 맞물려 정치적 성향을 띠게 된다. 어린이 발진 전염병인 성홍열의 경우 경술국치 이전에는 양독발반으로 불리다가 화독발반으로 바뀌었다. 일제가 콜레라 등 전염병 환자를 격리치료하자 “순사에게 잡혀 끌려가면 피병원이 얼음 속에 넣고 얼리는데 벌써 70명이 얼음귀신이 됐다더라” 하는 소문이 퍼졌다.

3·1 만세운동 이듬해에도 콜레라가 전국적으로 유행했는데 항일 감정과 더해져 격리 호송차를 군중이 가로막고 밤새워 지키기도 했다. 호송 동대문경찰서에 돌이 날아들었다. 배일 폭동으로 이어질 기세를 보이자 종로경찰서가 기마 순사까지 동원했다는 보도다. 이때 군중은 “이제는 세브란스병원으로 가자”고 소리 높여 외쳤다. 기마 순사 칼에 베인 시위 환자도 세브란스로 후송됐다.

당시 대중은 세브란스를 비롯해 선교 거점에 설립된 기독병원을 신뢰했다. 전주 예수병원, 부산 일신병원 등이다. 이들 병원은 치료를 넘어 고아를 거두었고 학교를 세웠으며 교회를 통해 영혼을 일깨웠다.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것을 알게 했다. 미국 의료선교사 미네르바 구타펠이 서울에서 거둔 ‘버림받은 종년’ 옥분이는 병마로 두 손과 다리 한쪽을 자르고서야 살 수 있었는데 그의 첫마디가 “내가 조선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예요”였다.

그렇게 1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의료산업’이라는 시장 논리 가운데 코로나19에 직면했다. 각종 의료계 문제를 의료산업 논리로 풀자니 인공지능의 판단과 같은 냉정한 기술만 남는다. 인공지능을 조정하는 의료인은 영적 존재가 되려 한다. 의료 기득권의 행위가 국민에게 ‘얼음귀신’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럼에도 현대판 허준과 슈바이처는 동네마다 있다.

전정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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