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대통령 겨냥한 먼지털이식 수사

국민일보

[특파원 코너] 대통령 겨냥한 먼지털이식 수사

하윤해 특파원

입력 2021-02-24 04:03

현직 대통령, 단 한 사람을 표적으로 수사가 진행됐다. 수사 기간은 1년10개월, 수사에 들어간 세금은 389억원. 발부된 수색영장은 약 500건, 수사기관이 요구했던 녹음 기록은 230건 이상. 발부된 소환장은 2800건 이상, 증언한 사건 관련인은 거의 500명. 영락없는 전방위 수사, 먼지털이식 수사, 저인망식 수사에 혐의가 드러날 때까지 무한정 파는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다.

물론 한국 사례는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정조준했던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특별검사팀의 수사 얘기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림자’ ‘유령’으로 불렸던 로버트 뮬러 특검이 수사를 이끌었다. 수사는 2017년 5월부터 2019년 3월까지 675일 동안 진행됐다. 러시아 스캔들의 핵심은 2016년 미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선거캠프와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공모·내통했는지 여부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핵심 쟁점이 달라졌다. 트럼프가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방해한 것 아니냐는 ‘사법 방해’ 의혹이 더 큰 문제로 튀어 올랐다. 그러나 뮬러 특검은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한계를 인정했다. 사법 방해 의혹과 관련해선 한마디를 남겼다. “우리는 대통령의 범죄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말장난 같기도 했고, 고뇌의 표현 같기도 했다.

위에 언급한 수사 규모는 백악관이 2019년 4월 18일 내놓은 보도자료에 포함된 수치다. 한국에서 현직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한 매머드급 수사가 1년10개월 동안 진행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대통령 최측근이나 주변 인사에 대한 수사만 진행돼도 나라가 둘로 갈라져 시끄러운 것이 지금의 한국이다.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했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기간은 겨우 90일이었다. 미국 특검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았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습격 사건은 미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보여줬다. 그러나 미국의 사법 시스템은 민주주의보다 우위다.

러시아 스캔들 특검 수사의 교훈은 적지 않다. 우선 정치권의 거리두기다. 특검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사람은 딱 한 명, 트럼프밖에 없었다. 공화·민주당 모두 수사를 조용히 지켜봤다. 트럼프 친정이었던 공화당에선 특검 수사를 ‘꽃놀이패’로 보는 기류가 있었다. 트럼프가 탄핵이 돼도 좋고, 탄핵이 안 돼도 좋다는 정치적 계산이었다. 민주당에선 믿었던 뮬러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불평이 나왔다. 그러나 겉으로는 수사 결과를 존중했다.

뮬러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수사 기간 내내 숨어 지냈다. 엄청난 수사력을 쏟아부었으나 ‘빈손’ ‘맹탕’이라는 비난도 피하지 않았다. 별건 수사로 탈출구를 찾지 않았던 것이다.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미국 여론은 수긍했다.

문재인정부를 겨냥한 검찰의 일부 수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져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야 모두 이제는 검찰 수사에 적당한 거리를 두는 ‘사법적 거리두기’를 했으면 좋겠다. 검찰도 뮬러 특검의 별명인 그림자처럼 처신하고, 무리한 수사보다는 차라리 빈손을 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쓸데없는 말인 줄 알면서도 꺼내본다. 트럼프는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검찰의 칼날 앞에 서 있다. 가족기업인 트럼프그룹의 금융 사기·탈세 의혹, 의사당 난입 사태 선동 등 혐의도 많다. 민주주의에선 망신을 당한 미국이 사법 시스템에선 체면을 회복할 수 있을지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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