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락 (12) “내 손녀 맡아주면 당신이 믿는 예수님 믿겠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역경의 열매] 이종락 (12) “내 손녀 맡아주면 당신이 믿는 예수님 믿겠다”

은만이 돌보는 모습 지켜보던 할머니
의료사고로 누워지내야 하는 손녀 부탁
신앙 갖겠다는 말에 덜컥 “돌봐줄게요”

입력 2021-02-25 03:01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2009년 2월 이종락 목사의 수양딸인 상희(가운데)의 초등학교 졸업식에 정병옥 사모(오른쪽)가 함께했다.

7살 상희는 의료 사고로 평생 누워 지내야 하는 아이였다. 83세 할머니가 손녀를 돌보셨는데 병원에서 어느 날 나를 부르셨다. 은만이를 돌보는 모습을 사흘간 유심히 지켜보다 말하는 것이라며 애원하셨다. “나는 늙었는데 상희를 돌볼 사람이 없어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아저씨가 손녀를 잘 키워줬으면 해요.”

속으로 ‘이상한 할머니네. 우리 은만이 돌보기도 어려운데…. 양심 없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내게 은만이처럼 누워있는 아이를 한 명 더 돌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절하려 하는데 할머니가 대뜸 “제 손녀를 돌봐주면 당신이 믿는 예수님을 믿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거절할 수 없었다. ‘내가 손녀를 돌보지 않아 할머니가 예수님을 안 믿으면 엄청난 책망을 받겠구나.’ 나는 그 자리에서 “할머니, 제가 손녀를 돌봐주겠습니다”라고 말해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할머니에게 틈틈이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2개월간 기도하고 아내와 함께 새벽기도를 다녀오던 날 아침, 아내에게 상희 할머니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아내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생각도 못 한 말을 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해야죠.”

‘내가 아내를 너무 몰랐구나.’ 뭉클함에 아내를 꼭 안아줬다. 얼마 뒤 은만이와 상희가 퇴원해 우리 집에 왔다. 당시 우리 집은 시장 구석에 있는 단칸방이었지만 사람의 온기가 가득했다.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오던 상희 할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의 품에 안겼다.

새 식구를 들여 지출이 더 늘어난 상황이었지만, 경제 상황이 좋아질 계기는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과 다른 길로 인도하셨다. 어느 날 나를 전도한 전 직장 사장이 어렵게 사는 나를 찾아 돈을 손에 쥐여줬다. 하나님께로 인도해주신 것으로도 충분한 은혜를 받았는데 다섯 식구가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나는 그 돈으로 서울 사당동 산꼭대기에 작은 사글셋방을 얻어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했다. 그 일도 못 하게 됐을 때 지인이 중고 승합차를 살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 차로 배달 일을 하며 주말에는 교회 차량 봉사도 했다.

그런데 배달 일이 끊겨 차를 놀려야 했다. 이번에는 다른 지인이 1년간 차를 빌려 쓰며 이용료를 줬다. 그동안 자판기 설치를 병행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병원비 부담이 다소 줄었다. 그 무렵 우연히 우·양산 사업을 하는 동네 사장을 만나 우산과 양산을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누빌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 덕분에 아이들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

상희로 하여금 나는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알게 됐고, 상희의 할머니는 주님의 자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상황은 어려워 보였지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지인들 덕분에 사람의 따스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상희 덕분에 내가 생각해 보지 않은, 뜻하지 않은 삶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갓플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