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교회도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

국민일보

[내일을 열며] 교회도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

맹경환 종교부 선임기자

입력 2021-02-25 04:05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알렌은 선교사 이전에 의사였다. 의사였기 때문에 조선에 들어와 정착할 수 있었다. 고종은 선교를 허락하지 않았다. 선교사들이 한반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의료 사업과 교육이었다. 주권을 완전히 상실하기 전까지 조선과 대한제국이 유지한 정책이었다. 알렌도 이 사실을 잘 알았다. 전도는 잠시 미뤘다. 조선에 온 그해 12월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알렌은 칼에 찔려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하고 고종의 마음을 얻었다. 이 사건은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제중원)의 설립으로 이어진다. 고종이 건물과 운영비를 대고 알렌을 파송한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가 의사와 의약품을 조달하는 형식이었다. 고종에게 제중원은 왕립병원이었고, 선교사들에게 제중원은 선교 현장이었다.

알렌 이후 선교사들의 출발점은 제중원이었다. 의사였던 스크랜턴과 헤론은 의료진으로 합류했고, 언더우드나 아펜젤러는 서양의학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이들은 목사라는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교회는 그렇게 전략적으로 시작됐다.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던 시기 기독교는 근대화와 애국의 길로 여겨지며 가파르게 성장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해방 후 한국경제만큼이나 한국교회도 눈부시게 성장했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국가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성장이 둔화된 1980년대를 거쳐 90년대 중반 이후 정체를 넘어 교세가 감소하면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을 지나면서 한국교회의 위기는 피부로 와닿는다.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것에서 더 나아가 반기독교 정서는 확산일로다. 선한 일은 묻히고 일부 교회의 집단감염은 부풀려진다. 신천지는 이단이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국민 눈에는 그저 기독교일 뿐이다. 전광훈 목사의 과격한 주장은 교계의 인정을 못 받는다고 해도 기독교의 목소리로 치부된다. 많은 분이 코로나19 이후의 한국교회를 걱정하고 있다. 어떤 분들은 신앙과 예배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고, 어떤 분들은 공교회성 회복을 강조한다.

모두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국민의 마음부터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민심을 얻기 위한 전략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초기 선교사들은 당시 사회적 기준과 국민의 눈높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1880년대 조선은 선교사가 아이를 팔아넘긴다든가 심지어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돌던 상황이었다. 과거 천주교 박해 때의 기억도 생생했다. 선교사들은 성급한 전도가 아니라 의료와 교육을 통해 백성의 마음부터 얻었다.

대부분 교회는 방역 지침을 철저하게 준수했다. 대면예배를 통한 감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교회는 코로나19의 진원지로 인식되고 있다. 억울한 일이다. 대면예배를 강행했던 한 목회자는 “시골 식당에도 20여명이 마스크를 벗고 식사한다. 그런데 1만석 넘는 예배당에 20명만 모이라고 한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교회가 헬스클럽이나 PC방 업주처럼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을 때 얼마나 호응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다”고 걱정하면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당부한다(마 10:16). 세상은 믿음의 사람들만 살지 않는다. 언제든 해를 끼치려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살아남아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세상과 맞서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신앙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다. 비둘기 같은 순결로 지켜야 한다. 세상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복음 전파도 가능하다.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한 때다.

맹경환 종교부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