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밝은 소식’ 묵음 해제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밝은 소식’ 묵음 해제

윤소정 패션마케터

입력 2021-03-01 04:07

코로나19 때문에 화상 강의를 시작한 지 벌써 1년이다. 대학 강의가 직업인데 처음엔 멀리 있는 학교까지 오가는 시간이 절약돼 나름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실습 과목 선생님들과 달리 강의가 중심이라 이 정도면 큰 불편은 아니라고 스스로와 학생들에게 얘기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물리적으로 계산되지 않는 묘한 부작용이 생겼다. 언젠가부터 학생들에 대한 답답함과 미움이 조금씩 쌓이더니 연말쯤에는 분출될 것 같은 화를 참느라 애를 먹었다. 제발 비디오 켜고 얼굴 좀 보여 달라고 수없이 얘기해도 소용없는 소리를 혼자 외치며 학기를 마감했다.

학생들과 수업하는 것이 꽤 즐거워 강의가 천직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랬을까. 떠올려 보니 한 해 동안 학생들과의 긍정적인 대화는 최소화되고 반갑지 않은 대화는 어쩔 수 없이 더 많이 했던 게 원인인 것 같다. 화상으로 강의를 운영하다 보니 초롱초롱 반갑고 흥미로운 표정은 볼 길이 없고 출석·과제·성적 등에 관한 문의는 훨씬 늘었다. 수업 중에 여러 번 얘기했는데도 묻고 또 묻고. 강의 비디오를 켜놓긴 했지만 집중은 못 했나 보다. 학생들이 더 힘들었겠지만 강사도 함께 지쳐갔다.

학기 말에 비디오를 모두 켜고 과제 발표를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밝은 얼굴들과 꽤 잘해 온 과제들을 보며 그동안 정보 수집에 균형이 깨졌던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밝은 얼굴은 못 보고 꼭 해야 하는 다소 불편한 얘기만 나누다 보니 미움이 쌓였구나 하는 생각은 문득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내가 많이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데로 번졌다. 훈훈한 소식은 뉴스가 안 되고 듣기 싫은 소음이 주로 들리니 내가 사는 사회가 건강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아닐 거다. 좋은 소식들이 묵음 처리돼 있을 뿐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매일 따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거다. 이제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에도 좀 알리고, 뉴스에 밝은 소식 쿼터제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윤소정 패션마케터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