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밉상이 된 교회

국민일보

[바이블시론] 밉상이 된 교회

안교성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입력 2021-03-05 04:04

교회가 밉상이 되고 있다. 비단 요즘만의 일일까? 한국에 개신교가 전래된 지 한 세기 반이 되는데, 그간 한국교회는 다양한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런 비판은 오해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19세기 말 한국에서 기독교는 낯선 종교이자 문화였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오해가 빚어졌다. 대표적 사례가 1886년 ‘영아 소동’인데, 선교사들이 아이를 유괴해 약재로 삼는다는 등 엉뚱한 소문이 번진 것이었다. 또한 근현대 기독교 선교가 제국주의 배경 가운데 이뤄지면서 교회가 자의든 타의든 외세를 등에 업곤 했다. 이 과정에서 종교가 연루된 사건인 ‘교안(敎案)’이 발생했다. 1901년 제주도 ‘신축교안’이 대표적인데, 제주 봉세관이 징세원으로 가톨릭 교인을 동원하자 조세 저항으로 인한 교인과 도민 간 소규모 분쟁이 마침내 대규모 전투로 비화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사후 처리에 열강이 참여했던 국제적 사건이었다.

20세기 초반 기독교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다. 먼저 기독교 내부 사정에 대한 비판이다. 1917년 이광수는 기독교의 기여를 칭찬하더니 비판으로 돌아섰다. 기독교가 계급적이고 교회 지상주의이며, 교역자들은 무식하고 미신적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회가 성장했지만 성숙하지 못해 소아병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지적이다. 대사회 관계에 대한 비판도 일어났다. 공산주의 대두 이후 반기독교운동이 일어났는데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1925년부터 본격화한 반기독교운동은 기독교가 약자를 위한 종교로 자처하지만 실상은 방해 세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골자다.

끝으로 해방을 전후해 기독교는 친일청산과 반공주의, 독재와 민주화 등 온갖 정치·사회적 소용돌이 가운데 비난받았지만, 그런 문제는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말부터 기독교를 겨냥한 보다 강도 높은 비난이 쏟아졌다. 가령 ‘안티 기독교’를 들 수 있다. 새로운 비판은 이전의 비판과는 성격이 달랐다. 이전 비판이 주로 교인이나 교회를 대상으로 삼았다면 새로운 비판은 기독교 자체를 문제 삼았다. 따라서 비판은 신에게까지 미쳐 교인 입장에서는 신성모독적으로 여겨질 정도다. 종교학자 이진구는 이런 비판은 도덕성을 지니지 못한 교회의 독선주의를 강조한다고 분석했다. 독선주의는 다원주의 사회인 후기근대사회로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환영받기 어렵다. 더불어 최근 기독교의 정치 과열 현상도 나타나는데, 이런 현상을 건전한 정치 참여보다는 이익집단의 집단행동으로 보는 입장이 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국 사회가 비판만 한 것은 아니다. 기독교가 근대화에 기여했고, 3·1운동의 주체 중 하나요 최대 피해 집단으로 민족종교의 면모를 보였으며, 교회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했다는 장점도 인정한다. 다만 오늘날 코로나19로 인해 교회 이미지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전락했다. 교회가 비판을 수용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사회가 비판마저 멈춘다면 교회를 포기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반복되는 비판이 있다. 기독교는 소통에 힘써야 하고, 자기의 힘이든 남의 힘이든 힘을 사용하는 데 유의해야 하며, 일반 대중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종교상에 부합하는 모습, 즉 성숙한 정신적 지도자와 이웃사랑 실천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나친 비판이 아니고 무리한 요구도 아니다.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보다 나빠진 이미지를 회복하는 게 몇 배나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제는 교회가 밉상이 되는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겸허하게 회복을 준비할 때다. 교회는 다양한 비판을 받아왔지만 복원력을 보여 이제까지 이어져 왔다. 과연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은혜를 구하고 지혜를 모을 때다.

안교성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