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이름값 못하는 유엔 안보리

국민일보

[한마당] 이름값 못하는 유엔 안보리

이흥우 논설위원

입력 2021-03-08 04:10

미얀마에 불고 있는 피바람이 그칠 기미가 없다. 국제사회의 압박도 군부엔 마이동풍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주말 미얀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으나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중국, 러시아 양국이 미얀마 사태 개입에 소극적인 탓이다. 말은 요란한데 국제사회의 실질적 행동이 뒤따르지 않다 보니 자국민을 짐승 잡듯 하는 군부의 만행은 갈수록 도를 더한다.

매일매일 코로나19 확진자 수 집계하듯 미얀마에선 군부의 무차별 발포로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 수를 집계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도 미얀마 국민의 저항은 사그라지기는커녕 더 활활 타오른다. ‘Everything will be OK(다 잘될 거야)’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시위하다 군경의 조준사격에 숨진 19세 여성 치알 신은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1936년 스페인에서 내전이 발생하자 세계의 지성인들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조지 오웰, 어니스트 헤밍웨이, 생텍쥐페리, 앙드레 말로, 파블로 네루다, 시몬 베유…. 이들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하지만 39년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선거에서 승리한 좌파정부를 무너뜨리고 승리하면서 이들의 이상은 좌절됐다. “정의가 패배할 수 있음을, 폭력이 정신을 꺾을 수 있음을, 용기가 보답을 받지 못할 수 있음을 스페인에서 배웠다.” 내전 후 앙드레 말로의 독백이다.

지금의 미얀마 상황이 이렇다. 민주화에 실패하면 내전 후 31년간 군사독재에 신음했던 스페인 전철을 밟을 건 불문가지다. 미얀마에선 정의가 이기고, 정신이 폭력을 꺾고, 용기가 보답받기를 세계의 모든 민주사회가 고대하고 있다. 23살 대학생 니니 아웅 뗏 나잉은 ‘유엔이 행동에 나서려면 얼마나 더 죽어야 하나’는 글을 SNS에 남기고 시위에 나섰다가 총탄에 숨졌다. 그러나 유엔의 행동은 굼뜨기만 하다. 어쩌면 유엔의 행동을 기다리는 것보다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게 빠를지 모른다.

이흥우 논설위원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