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담뱃값 인상, 증세의 전조

국민일보

[경제시평] 담뱃값 인상, 증세의 전조

신자은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입력 2021-03-09 04:02

지난 1월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이 발표됐다. 향후 10년 건강정책 청사진인 만큼 4년의 노고 끝에 탄생했는데 발표 하루 만에 허망하게 묻혔다. 내용은 아주 탄탄하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같은 기존 문제들과 함께 신종 질환, 마음 건강, 인공지능(AI) 기반 미래 헬스케어 발전까지 담아낸 적시성이 돋보인다. 지역사회와 예방 중심, 생애주기 기반 건강형평성, 삶의 질을 반영한 목표 설정과 다범주적 접근은 유엔의 지속가능개발목표와 맥락을 같이한다.

논란이 된 건 종합계획의 재원인 국민건강증진기금 확충안이다. 국민건강증진기금은 담뱃값에 포함된 부담금 841원으로 조성된다. 원대한 구상에는 높은 가격표가 불가피하니 재정 대책은 필수다. 2015년 담뱃값 인상이 4차 종합계획의 재원 확보에 기여한 전례도 있다. 흡연은 건강에 위해하고 우리나라 흡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위권이니 가격을 높여 수요, 즉 흡연량과 흡연율을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 다른 나라들도 담배와 술 같은 건강위해품목에 세금을 부과해 공공보건 재원으로 활용한다. 담뱃값 인상의 목표와 근거가 이토록 견고하고 ‘조속히 8000원’이라 천명된 것도 아닌데, 국무총리가 “전혀 아니다”라고 직접 해명할 만큼 민심은 험악했다.

우문, 담뱃값은 정말 안 오를까. 현답, 오른다. 첫째, 건강보험 재정 적자 때문이다. 한시적 특례 부칙에 따라 기금에서 건강보험을 지원한다. 2002년 도입된 부칙은 기한이 2022년까지 연장됐다. 이 지출이 2020년 기금 예산의 55.8%를 차지한다. 기금의 본래 목적인 건강생활실천사업에 10.5% 배정된 것과 대조된다. 2018년 재정 적자가 발생하자 당황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뱃값 인상, 주류 부담금 신규 도입을 주장한 것도 이런 속사정 때문이다. 급속한 고령화와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건강보험 재정은 벼랑 끝이고, 보험료율은 법정 상한선인 8% 턱밑까지 와 있다. 보험료율 상향 법개정을 하든지, 보장성 강화를 타협하든지, 국고 보조를 늘리든지 해야 하는데 예삿일이 아니다. 정부로서는 건강증진과 건강보험 재정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담뱃값 인상이, 시기는 조율할망정 포기할 수 없는 묘책인 것이다. 2018년과 똑같은 논란, 해명이 올해 다시 반복된 장면에서 사회적 합의는 아직 얻지 못했을지언정 담뱃값 인상에 대한 정부의 생각이 깊음을 엿본다.

둘째, 담뱃값 인상은 불패다. 담뱃값은 담배 수요의 가격탄력성을 적용해 목표 흡연율 달성을 위해 필요한 수준으로 정밀히 계산해서 정해지지 않는다. 2015년 담뱃값이 80% 인상됐는데 2014년과 2016년 성인 흡연율 차이는 0.7% 포인트에 불과했다. 흡연율이 완만하지만 지속적인 감소 추세이고 비가격정책도 적극 도입됐기 때문에 2015년의 담뱃값 인상과 흡연율 감소의 인과관계는 확실치 않다. 담뱃값을 인상해도 흡연율이 크게 낮아지지 않는다면 이는 가격 비탄력적 수요와 신종 담배 때문이고, 흡연율 목표에 미달한 반대급부로 기금이 넉넉히 확보돼서 종합계획의 차질 없는 추진과 건강보험 재정에 도움이 되니 일석이조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담뱃값 8000원으로 흡연율 목표를 달성하면 재정적으로는 아쉬울지 모르지만 정책은 대성공이다. 부담금의 역진적 특성과 저소득층의 높은 흡연율 때문에 얻게 된 서민 증세라는 오명도 기꺼이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불패 정책이다.

담뱃값 인상은 증세의 전조다. 창고가 바닥나는 사정은 국고, 고용보험, 국민연금도 매한가지다. 증세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겠지만 누구든 결국 그 방울을 달아야 모두가 살 수 있는, 그 막다른 지점에 와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진실되게 소통해주길 바란다.

신자은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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