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언더독에게 박수를

국민일보

[돋을새김] 언더독에게 박수를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입력 2021-03-09 04:08

‘취향 참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어릴 적 순정만화 ‘캔디캔디’를 돌려보면서 친구들 대부분의 이상형이 테리우스와 안소니로 나뉠 때 나홀로 스테어를 좋아했던 게 시작이었다.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서는 박보검이나 류준열보다 ‘도롱뇽’ 이동휘가 나오는 장면들을 찾아봤고, 영화 ‘어벤져스’의 최애 캐릭터도 호크아이였으니, 주연보다 조연에 주목하는 마이너 취향이 맞긴 하다.

선거에서 투표를 할 때도 마이너 기질은 어김없이 발동했다. 한 번도 표를 준 적이 없는데 지역구 의원은 어느덧 4선이 됐고, 다른 크고 작은 선거에서도 이길 가능성이 적은 후보에게 눈길이 가서 대부분 사표(死票) 전문 유권자 신세였다. 이래서야 투표장에 가는 의미가 있을까 자조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람 찍은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며 후회할 일이 적으니 정신건강과 손가락의 안녕에는 도움이 된 듯하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오늘로 딱 1년 앞으로 다가왔고,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중 맞붙을 최종 상대를 기다리는 상황이지만, 이들은 10년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나란히 주연급으로 등장했던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이들보다 관심이 갔던 후보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과 조은희 서초구청장이었다. 조 의원은 박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패했고, 조 구청장은 국민의힘 경선에서 탈락해 두 사람 모두 본선에 나서지 못하게 됐지만 말이다.

조 의원은 차별화된 시각이 신선했다. 1호 공약이 1인 가구 주택청약제도 개편 같은 ‘혼삶러’를 위한 것이었고, 2호 공약은 동물의료보험제 등 반려동물 양육 가구를 대상으로 했다. 사소해 보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높고, 적어도 구태의연하지 않았다. 1인 가구 비율이 30%를 넘어섰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도 1000만명이 넘지 않았는가. 3호 공약은 주4일 근무제였다. 토론회에서는 박 후보의 반값 아파트 30만 가구 공급 공약에 대해 “아파트는 레고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박 후보만이 아니라 앞다퉈 수십만 가구씩 아파트를 짓고, 강변북로를 덮거나 철도를 지하화하겠다는 다른 후보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정치형 시장이 아닌 행정가형 시장을 자임했던 조 구청장은 단단해 보였다. 조 구청장은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16.47%의 득표율로 3위에 그쳤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다’는 박수가 쏟아졌다. ‘일 잘하는 구청장’ 정도의 이미지였던 그가 전국구로 인지도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 의원도 만만치 않게 실속을 차렸다. 민주당에서 일대일 단일화로 체급을 올려줬고, 그의 공약 중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활용하면 현금화가 가능한 포인트를 지급하겠다는 부분과 1인 가구를 위한 주택청약 방안을 마련하는 아이디어를 박 후보 공약에 반영하기로 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는 서울시 의전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87년생 최연소 후보자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표를 비롯해 이수봉 민생당 비대위원장, 오태양 미래당 대표 등 10여명의 군소 후보가 레이스 완주 의지를 밝히고 있다. 승리할 가능성이 적은 약자를 더 응원하게 되는 것을 ‘언더독(underdog·약자) 효과’라고 한다. 1년 뒤의 대선 후보로 여러 이름이 언급되지만 이들 후보군과 유권자 모두에게 자극이 될 새로운 얼굴의 언더독 출현을 기대한다. 혹시 또 아는가. 사람들은 예상 못한 언더독의 선전에 더 열광하고 환호하기 마련이니, 승리의 반전 드라마를 만들어낼 언더독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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