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 칼럼] 김명수 대법원장은 ‘유죄’다

국민일보

[박현동 칼럼] 김명수 대법원장은 ‘유죄’다

입력 2021-03-09 04:20

대법원장의 거짓말은 사법의 정치화를 드러낸 서글픈 현실
입법 및 행정부 정책이 성공을 겨냥한다면 재판은 진실 추구 과정…
본질적 가치 훼손되면 개인과 국가 모두에 손실
국민의 생사여탈권까지 행사하는 사법부가 흔들려선 안 돼

재판에서 거짓말은 유무죄 심증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표와 관련, 거짓말을 한 사실이 녹취파일에서 확인됐고, 본인 스스로도 인정했다. 진술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있으니 거짓이 명백하다. 그러나 그는 ‘부주의한 답변’이라고 했다. 궁지를 모면하기 위한 해명으로, 반성은 없다. 9개월 전 기억이라 분명치 않다고도 둘러댔으나 그냥 거짓말일 뿐이다. 정치적 고려가 없었다거나 궁극적 목표는 독립된 법관에 의한 ‘좋은 재판’이었다는 등의 어설픈 해명은 황당하다.김 대법원장이 ‘유죄’인 근거다. 적어도 진실의 법정에서는 그렇다. 이번 일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 개인의 명예는 물론 사법의 신뢰까지. 참담하다.

몇 번이나 망설였다. 많은 이들의 앞선 지적이 있었던 마당에 또다시 김 대법원장을 비판하는 것은 ‘한강에 돌 던지기’밖에 더 되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탄핵하자고 설치는데(중략), 법률은 차치하고 정치적 상황도 살펴야 하고(중략)”라고 했다. 내용은 ‘사법의 정치화’를 자복한 것이고, 화법은 뒷골목 수준이다. 지난 4일 열린 전국법원장회의는 최소한의 양심을 회복할 기회였다. 그러나 ‘불찰’이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대법원장이 거짓말을 불찰 정도로 인식하다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법원과 재판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변함없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 상황에서 ‘변함없이’라니…. 어색하고 낯뜨겁다. 진정성은커녕 스스로 염치없음을 확인시켜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 점 부끄러움도 엿볼 수 없는 그의 삿된 처신은 비루하다. 내가 한강의 돌이 된 이유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임 부장판사의 몰래 녹음이다. 둘 다 옳지 못하다. 핵심은 전자다. 두 쟁점은 연결돼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사안이다. 거짓말은 사과문을 통해 더 구차해졌다. 진실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마치 제삼자 일처럼 유체이탈 화법을 동원했다. 더욱이 국회를 상대로 했다는 점에서,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과 같다. 말 따로, 행동 따로다. 백번 양보해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더라도 무죄는 아니다. 작량감경(형법 53조)을 감안하더라도 유죄엔 변함이 없다. 법관, 특히 대법원장에게 기대되는 상식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되레 가중처벌의 혐의가 짙다. 양심의 법정에서도 유죄인 것이다. 취임사를 소환하면 배신감마저 든다. 김 대법원장은 유달리 ‘좋은 재판’을 강조해왔다. 3년여 전 취임사에서 좋은 재판 실현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멋진 약속이다. 대법원 홈페이지 대법원장 인사말에서도 좋은 재판을 천명한 것은 물론 올해 신년사에서도 좋은 재판을 말했다.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며 심판’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주장했고, 다짐한 그였다. 한데 공언은 허언이 됐다. 취임사는 휴지 조각으로 변했다. 이래서야 “의원님 살려주십쇼. 한 번만 해 보세요”라는 모멸적 언사를 사법부가 다시 듣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입법부와 행정부는 여론도 감안하고, 정치적 고려도 (해야)한다. 국민(수용자) 의식과 현실적 상황들을 무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선한 정책일지라도 현실을 무시할 경우 성공할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절대적으로 옳은 정책은 존재하기란 쉽지 않다. 정책의 필요성과 정당성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경고도 그래서 나왔다고 본다.

그러나 사법부는 다르고, 달라야 한다. 정책이 성공을 겨냥한다면 재판은 진실을 추구한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도 약자, 소수자, 소외자 등 힘없고, 돈 없는 국민이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곳이 사법부다. 헌법은 ‘법관의 자격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법원조직법은 이를 구체화하고 있다. 국민의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는 사법부 아닌가. 물론 사법부에 대한 시대적 요구도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실 추구를 위한 본질적 가치가 흔들려선 안 된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하야의 결정적 이유도 거짓말이었다. 대통령의 거짓말 이상으로 대법원장의 거짓말은 치명적이다. 물론 그도 인간이기에 진실을 회피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그 수단이 거짓말이어선 결코 안 된다. 우리는 대법원장의 거짓말을 상상한 적이 없다. 사법부가 정치를 하고, 그 수장이 거짓말을 한다면 우리가 믿고 기댈 곳은 어디인가. 슬픈 현실이다.

박현동 편집인 hdpark@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