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불공정이 부동산을 만났을 때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불공정이 부동산을 만났을 때

입력 2021-03-19 04:20

입시부정 조국 사태 거치며
한껏 예민해진 '공정'
벼락거지 부동산 대란 겪으며
오히려 더 벌어진 '격차'

두 이슈가 하나로 합쳐져
LH 사태는 터져 나왔다
정책 실패였던 부동산 문제에
불공정이 덧입혀진 상황

들끓는 국민적 분노를 보면서
사필귀정이란 생각도 든다

조국 사태와 부동산 대란. 훗날 문재인정부를 기억할 때 떠올리게 될 대표적 사건을 나는 이렇게 꼽는다. 둘은 정부가 만들어낸 혼란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이 시대 한국인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공정과 격차의 문제가 나란히 투영돼 있기도 했다. 조국 전 장관의 일이 처음부터 명백한 비리나 부패였다면 ‘사태’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 것은 적발해 처벌하면 되는 문제다. 교수 엄마가 표창장을 챙겨주고 부모 찬스로 논문 저자 타이틀과 각종 스펙을 쌓은 그의 자녀는 손쉽게 의사의 길에 들어섰다. “그게 공정한 거냐”고 묻는 여론 앞에서 “불법은 없었다”며 장관 임명을 강행한 순간, 대통령은 정부가 생각하는 공정의 기준을 가장 낮은 단계인 법률로 끌어내렸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를 외쳤던 정권의 공정 감수성은 국민 눈높이와 여러 차례 괴리를 드러냈다.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부터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까지 예상치 못한 불공정 논란에 번번이 허둥대곤 했다. 그런 흐름의 정점에 해당할 조국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대통령이 만들어낸 “합법적 불공정”이란 말의 어색함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부동산은 한국인의 자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가치의 변동은 격차와 직결된다. 대통령이 “부동산은 자신 있다”고 여러 번 장담한 것도 그래서일 테다. 집값 과열을 막는 일은 양극화 제어를 위해서도 필요했는데, 정부가 꺼낸 진단과 처방은 오히려 폭등을 불러 ‘벼락거지’를 양산했다. 경제학의 기본인 수요-공급의 원칙을 외면한 결과였다. “공급은 부족하지 않다. 투기 세력 때문이다”라는 진단을 3년 넘게 고집했다. 20여 차례 대책이 나올 때마다 계단식 상승을 거듭한 집값 추이와 4년 만에 공급 총력전을 외치고 나선 급선회 기조가 완벽한 정책 실패를 말해주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으로 격차를 해소하겠다던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쳐다보기 힘들 만큼 격차를 벌려놔 많은 이들을 자포자기하게 했다. 그에 대한 사과도 없이 2·4 대책을 발표하며 “공급쇼크” 수준이라고 자랑하던 말의 씁쓸함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19년 조국 사태는 정치·사회 영역에서, 2020년 임대차 3법으로 절정에 이른 부동산 대란은 경제의 영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전자는 공정이란 가치의 문제였고, 후자는 먹고사는 문제였다. 사람들은 조국 사태를 놓고 불공정을 비난했지만 당장 내 삶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걱정하진 않았다. 그들은 또 부동산 대란을 보며 정책 실패를 비판했지만 공정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이렇게 다른 갈래로 뻗어가는 듯했던 두 사안이 2021년 하나로 합쳐지고 말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는 조국 사태로 더 예민해진 불공정 이슈와 이 정부 들어 한껏 민감해진 부동산 문제가 결합해 터져 나왔다. 개발 정보를 다루는 공직자들이 앞장서서 땅 투기를 했다. 보통 사람은 알지도 못하는 수법이 동원됐다. 수십년 농사짓다가 그들에게 땅을 넘긴 사람은 “당했다”며 분노하고, 그들이 그 땅에서 수억원대 차익과 아파트까지 챙기려 했다는 사실에 내 집 마련을 꿈꾸던 많은 이들이 또 분노하고 있다. 정부가 안정화에 ‘실패한 부동산’은 이제 ‘불공정한 부동산’이 됐다.

조국 사태와 부동산 대란을 다룬 이 정권의 방식은 LH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공정 논란을 “검찰 개혁” 구호로 밀어붙여 수사권 조정을 해치웠는데, 막상 LH 사태가 터지니 수사를 맡길 곳이 없었다. 정부 합조단에 시켰다가, 경찰 합수본에 보냈다가, 결국 특검을 하게 됐다. 경찰 수사에 회의적인 여론이 일자 대통령이 “검찰과 경찰의 유기적 협력”을 지시한 대목은 코미디 같았다. 부동산 대책을 거듭하며 민간주택 공급을 죄다 틀어막은 정부는 공공주택 공급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공공임대주택과 공공재개발 모두 LH가 하는 일인데, 그 LH를 해체해야 할 판이다. 정부가 잡겠다던 투기 세력이 공공기관에 있었다. 공공을 향해 거대한 불신이 조성된 마당에 공공 주도 공급을 차질 없이 하겠다는 말은 공허하게만 들린다.

‘조국+부동산=LH’라는 황당한 등식이 이렇게 아귀를 맞추는 걸 보자니 이번 사건이 촉발한 국민적 분노의 크기가 두렵기까지 하다. 해법도 잘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 적폐”로 책임을 돌려 될 일이 아닌데 그러는 걸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이게 다 사필귀정이란 생각도 들고, 그렇다.

편집국 부국장 wjta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