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중도층이 화났다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중도층이 화났다

입력 2021-03-30 04:20
여론조사서 중도층 절반 이상
야당 후보 지지, 정권 초기와
정반대 현상… 상식과 합리로
무장된 중도층 무시한 결과

강력한 중도층 등장으로 보궐
선거 이후 여권 분화 피할 수
없어… 대선 다자 구도 또는
제3세력 출현 가능성 잉태

비현실적 ‘강경=개혁’ 도그마
빠진 여권 내부의 적들이 되레
개혁을 실패로 몰아가


4·7 보궐선거 여론조사들은 여권이 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서울과 부산의 야당 후보가 앞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조사는 조사일 뿐이고 숨은 표도 있겠다. 일주일 이상 남았으며,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지율 자체보다 추세를 보는 게 더 참고가 된다. 그런데 추세도 역시 대통령이나 여당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세다. 그래서 이미 승패가 갈렸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뒤집을 국면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초기 80%를 훨씬 넘었던 국정 지지율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 이니 마음대로 해’라는 애정과 지지가 담뿍 담긴 외침은 왜 들을 수 없나. 최근 여론조사가 발표될 때마다 ‘최저치 경신’ ‘콘크리트 지지율 깨졌다’는 표현이 따라나온다. 지난 대선 때 ‘샤이 보수’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보수라는 게 창피해서 밝히기를 꺼려 했던 건데, 이번에는 ‘샤이 진보’라는 표현이 여기저기서 사용된다. 왜 이렇게 됐는가.

이 같은 여론의 흐름은 여권이 중도층을 무시해서 일어난 결과다. 중도층의 생각을 무시한 결과는 여러 현상을 잉태한다. 첫째, 진영 논리에 따른 지독한 ‘내로남불’과 비상식에 화난 중도층의 저항이다. 조국 윤미향 금태섭 사건과 피해호소인 언급,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와 추미애-윤석열 대립 등이 촛불 때 지지해줬던 중도층을 대척점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2016년 촛불시위 때부터 전폭적으로 지지해줬던 중도층의 변심은 죄가 없다. 초등학생도 알만한 견제와 균형이 깨지고, 중간지대에서 나오는 합리적 비판까지도 토착왜구의 발호쯤으로 공격하는 건 뭔가 정상 궤도에서 이탈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 느낌은 정치적으로는 중도층,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에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개혁을 바라는 것과 이 문제는 별개다. 최근 정권 심판론으로 기울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해 7월 임대차법 시행 이틀 전에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14% 넘게 올린 사실이 드러나 어제 전격 경질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내로남불 행태에 민심은 더욱 싸늘해졌다.

둘째, 야권이 잘해서 중도층이 이탈한 게 아니라는 점이 여권으로서는 더욱 난감하다. 반사이익이야 좀 있겠지만 제1야당에 대한 비호감도 역시 높다. 중도층 분노의 원인은 여권 내부에 있다. 강성 지지층에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휘둘리고, 검찰 개혁이라는 추상적 목표가 해결이 필요한 다른 모든 이슈를 깡그리 잡아먹는 정치 행위는 불안을 주기에 충분조건이 된다. 더구나 ‘강경=개혁’이 모든 것인 양 일부 초짜 국회의원들의 ‘닥공 정치’와 이에 대한 적절한 컨트롤 부재는 현재 여당의 고질이다. 약점을 찾아내고 개선 방안을 찾게 하는 레드팀의 부재, 이건 모든 조직에 치명적이다. 레드팀 역할을 배신으로 좌표 찍는 일은 일상적 행위가 돼버렸다. 닥공의 결과는 예측 가능하다.

셋째, 뚜렷한 중도층의 현실적인 등장으로 보궐선거 뒤 여권 분화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대선 과정에서 노선 갈등은 당연하고, 강력한 중도층 현상은 이를 견인하는 최대 요소다. 더구나 경쟁력 있는 친문 대권 주자는 현재로선 없다. 생존을 위해 문파와 운동권 정치그룹은 더욱 뭉치고 강공으로 나갈 것이다. 여당 후보의 선거운동과 결이 다른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 임종석의 고 박원순 언급, 그리고 캠페인에서 사라진 ‘문재인 마케팅’은 그런 조짐을 보여준다.

넷째, 대선의 다자 구도 또는 중도충 기반의 제3세력 출현이다. 윤석열 현상은 아무리 봐도 여권 강경 세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윤석열이 정치에서 성공할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현재의 월등한 경쟁력은 여권 이탈 중도층의 분노가 그를 통해 분출됨을 알린다. 그 중도층이 완전히 돌아서서 보수층과 결합하면 여권은 내년에 힘든 선거를 치러야 한다.

여권이 중도층의 생각을 무시한 결과는 선거 과정에서 현실화된다. 뒤늦게 전 공무원 재산공개(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단언컨대 선거 끝나면 없던 일이 된다) 같은 대책을 황급히 내놓는 걸 보면 선거 때라 여당이 위기 의식을 잠시 인식한 것 같긴 하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일본 전국시대의 역사를 바꿔 놓은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에서 유래된 말. 여권을 망가뜨릴 적은 내부에 있고, 내부의 적은 거대한 중도층 바람과 저항을 만들었다.

논설고문 mhki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