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정년 연장의 정치

국민일보

[여의도포럼] 정년 연장의 정치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입력 2021-04-08 04:04

일본은 이달부터 ‘70세 정년’을 시작했다. 엄격히 말해 정년 연장이랄 수는 없지만 어떤 형태로든 70세까지는 고용을 유지하도록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했다. 이미 30% 넘는 기업이 65세 이상 고용 유지를 시행 중이고 여타 기업들도 이런 변화를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사회 전체가 평생 현역을 지향하며 그에 맞게 기업 문화와 임금직무 체계를 유연하게 고쳐 놨기 때문이다. 일률적이진 않지만 기업에 따라 60세 이후 임금은 평균적으로 종전의 60% 밑으로 조정된다. 고용 형태도 꼭 정규직은 아니고 촉탁이나 계약직 또는 협력업체나 심지어 NGO 취업 지원까지 다양하다. 유럽 국가에서 정년 연장의 정치는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우리나 일본과 다르게 작동한다. 고령화에 따라 65세였던 정년 또는 연금수급 연령을 67세 이상으로 높이는 것이 추세지만 노동자의 거센 반발은 정권을 위협할 정도다. 미국이나 영국, 호주는 나이를 이유로 해고하는 것 자체를 연령 차별이라며 금지한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지만 65세 정년은 조심스럽다. 이유는 두 가지다. 2016년 시작한 60세 정년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고 임금체계나 고용계약이 경직적이기 때문이다. 700만명이 넘는 베이비 붐 세대(1955~1963년 출생)가 은퇴에 몰리던 시기에 60세 정년은 정치적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박근혜정부가 자리 잡기 전인 2013년 4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법 개정을 뚝딱 해치웠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우왕좌왕했고 애먼 민간기업의 50대 관리직들만 60세 정년이 의무화되기 직전 명예퇴직에 내몰렸다. 공공부문과 일부 대기업은 임금피크로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지만 그들만의 잔치였다. 한림대 석재은 교수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공공부문과 노조가 버티고 있는 일부 대기업 근로자 등 12% 안팎이 60세 정년의 주된 수혜자였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더 심해졌다.

정년 연장은 이제 발등의 불이다. 무엇보다 2033년부터 연금수급 연령이 65세로 높아지는데 60세 정년만 그대로 둘 수 없는 노릇이다. 일본처럼 정년 연장은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부족의 대응책이 될 수 있다. 현장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LG빌딩 청소노동자나 현대차 생산직, 금융 노조까지 정년 연장은 단골 요구 사항이 됐다. 한국노총은 내년 대선에서 주요 정당을 상대로 65세 정년의 공약 채택을 압박할 것이다.

정치적 계산으로도 나쁘지 않다. 정년 연장 수혜자인 50대는 860만명 정도로 20대 청년보다 200만명가량 많다. 40대 810만명까지 가산한다면 표를 쫓는 정당이 결코 놓칠 아이템이 아니다. 그런 조짐도 보였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정년 연장의 운을 뗐지만 재계 반발 등에 놀라 논의를 접은 바 있다. 박근혜정부 때도 공무원 정년을 65세로 연장할 계획을 세웠지만 탄핵으로 물거품이 됐다. 매년 2조원 이상 적자인 공무원연금 재정을 생각하면 이것이야말로 발등의 불이지만 그들만의 잔치라는 여론의 질타도 두렵다.

정년 연장은 양날의 칼이다. 잘못하면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청년의 고용 기회만 빼앗는다. 반대로 잘만하면 교육과 노동, 복지 개혁의 촉매가 될 수 있다. 가장 경계할 사태는 ‘3년 내 최저임금 1만원’처럼 정년 연장이 선거 경품으로 내걸리는 것이다. 어차피 다음 정부는 정년을 연장하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 문제는 이를 고리로 성인교육과 노인복지 개혁까지 하나의 패키지로 묶을 수 있느냐이다. 예컨대 60대를 일하는 생애단계로 설정하고 50세 전후부터 경력 전환을 지원하는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제2의 정규 교육처럼 운영할 수도 있다. 회복 불능 위기에 빠진 지방 대학에도 새로운 기회가 된다.

고령자 입장에서도 50대 초반 평생 다니던 직장을 나와 그동안 경력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자리를 전전하며 생계형 빈곤노동에 시달리느니 제대로 인생 이모작을 설계하는 게 낫다. 또한 1964년 노인복지법에서 정한 65세 노인 규정도 바꾸고 경로우대를 비롯한 노인복지 기준 연령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변화에 앞서 노사가 먼저 고령자 고용을 방해하는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와 인사시스템 혁신에 나서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순탄하게 조율해나가고 2013년의 정년 60세 법 개정 때처럼 졸속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범정부 인구정책태스크포스가 치밀한 실행 계획을 갖고 폭넓은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구해 나가야 한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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