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개척 철학의 빈곤 심각… ‘예타’하는 나라 한국뿐”

국민일보

“우주 개척 철학의 빈곤 심각… ‘예타’하는 나라 한국뿐”

[인터뷰 사이] 문홍규 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입력 2021-04-08 04:03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대전 유성구 한국천문연구원 우주물체감시실에서 화면에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근지구소행성들의 궤도를 응시하고 있다. 문 박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 조선 세종 때 간의를 만든 한국의 천문학은 17세기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처음 해와 달, 별들을 보기 전까지 페르시아, 중국과 더불어 세계 최고였다”며 “신대륙 개척처럼 경제권 확대로 연결되는 우주 개발 기회를 놓치기 전에 우리도 우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윤성호 기자

바야흐로 우주 대항해시대다. 지난 2월 아랍에미리트(UAE)와 중국이 잇따라 화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고, 뒤이어 화성에 착륙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탐사 로버 ‘퍼서비어런스’가 꾸준히 탐사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일론 머스크의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가 오는 9월 우주 관광에 나설 최초의 민간인 우주여행팀 승객 명단을 발표했다. 오는 11일에는 퍼서비어런스에 탑재된 드론 헬리콥터 ‘인제뉴어티’가 화성 하늘에서 첫 시험 비행을 한다.

한국천문연구원 문홍규 책임연구원에게 한국의 우주 탐사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우주강국들은 어떻게 우주산업을 준비하고 있는지, 한국이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물었다. 문 박사는 유엔 평화적 우주이용위원회 근지구천체분야 한국 대표이자 국제우주과학위원회 한국위원회 위원이다. 그를 만난 지난달 26일은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1단부 최종 연소시험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전해진 다음 날이었다.

-한국은 아직 구체적인 화성 탐사 계획이 없지만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화성에 탐사선을 보낸 UAE에 위성 기술을 전수한 게 한국 기업 쎄트렉아이였고, NASA의 화성 헬리콥터 인제뉴어티 개발 초기에 한국 기업이 참여했다고 들었다.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가 호주에서 화성 탐사 모의실험을 진행하면서 탐사 로버와 드론을 개발하는 한국 무인탐사연구소의 프로토타입(시제품)을 썼다. 이후 문제점을 보완해 인제뉴어티에 적용했다고 한다. 쎄트렉아이는 한국에서 처음 인공위성 ‘우리별 1호’을 쏘아 올린 연구자들이 설립한 우주기업이다. UAE는 2006년 우주 전담 기관을 세우고 화성 탐사 계획을 준비하면서 쎄트렉아이에 유학생 10여명을 보냈다. 유학생들은 길게는 10년간 한국에 머물면서 KAIST에서 학위과정도 밟았다. 이들이 귀국 후에 장관을 비롯해 UAE 우주센터의 주요 보직을 맡았다.”

-지난달 ‘누리호’가 종합 연소시험에 성공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세계 7대 우주 강국’이라고 말했다. 발사체 기술만을 얘기하는 건가.

“자력 발사를 기준으로 말하는 거다. 우주 탐사 목적으로 자력 발사가 가능한 곳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 유럽우주국이다. 그다음이 한국이라는 거다. 이번에 화성 탐사선 ‘아말’을 보낸 UAE는 일본의 H2-A 로켓을 썼으니 자력 발사는 아닌 셈이다.”


-달을 탐사하고 화성에 가는 건 발사체가 전부가 아니지 않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0년도 기술수준평가’를 보면 우주·항공·해양 부문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의 기술 수준 격차는 8.6년, 중국과는 3.5년이었다.

“한국의 우주 기술 수준은 분야마다 다르다. 지구 궤도에서는 정상급이지만 지구 중력권 밖으로 나간 적은 없다. 하지만 이제 시도해볼 때가 됐다. 중요한 건 기술보다 철학이다. 예를 들면 유럽의 강소국 룩셈부르크는 로켓을 만들지 않는다. 하드웨어를 만들지 않고 다른 나라와 함께 우주에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우리는 UAE처럼 일본 로켓을 타고 가도 상관없는 나라가 아니지 않나.”

-자력 발사나 기술 독립도 의미 있지만 우리가 모두 해결할 필요는 없다는 뜻인가.

“우주 탐사는 결코 단일 국가의 역량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우리의 눈과 같은 항법 카메라나 GNC(Guidance, navigation and control·항법, 유도, 관제)처럼 핵심적으로 쥐고 가야 하는 부분이 있고, 국가 협업체계로 해결 가능한 부분이 있다. 일본의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에도 독일과 프랑스 우주국에서 만든 탑재체가 들어가 있고, 중국의 화성 탐사선 톈원 1호에도 유럽 과학장비가 들어가 있다. 중요한 건 미션 성공 아닌가.”

-잠깐 언급했지만 룩셈부르크의 우주 개발 계획이 흥미롭다. 우주에서 니켈 백금 같은 희귀 광물을 채굴하기 위해 소행성 탐사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룩셈부르크는 국토 면적이 제주도보다 조금 크지만 1인당 GDP가 세계 1, 2위인 나라다.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이던 에티엔 슈나이더가 ‘우주자원계획’을 주도하면서 2018년에 우주국을 세웠다. 대학에 천문학과 항공우주공학과가 없는 나라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까. 룩셈부르크는 인공위성 기술 없이 1980년대 중반 방송통신위성 사업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SES라는 회사가 70여개의 방통위성을 운영해 막대한 수익을 낸다. 이런 성공 신화를 바탕으로 우주 계획에 착수했다. 슈나이더 부총리는 자신이 실각해도 우주 계획은 초당적 합의 위에 이행될 거라 말했고, 그 약속은 지켜지고 있다. 이 나라는 전 세계 우주 광산 채굴 기업들을 자국에 유치하고 경제권을 태양계 공간으로 확장한다는 꿈을 펼치고 있다. 자본과 아이디어로 틈새시장을 여는 법을 아는 나라다.”

-우주 채굴 사업의 경제성은 어떤가.

“과거 남북극에 가는 일은 생명을 건 무모한 모험이었지만 지금은 자원의 보고라며 전 세계가 앞다퉈 진출하고 있지 않나. 달에는 핵융합 발전의 연료로 꿈의 자원이라 불리는 헬륨3가 있고 소행성엔 철 니켈 같은 금속과 희토류가 있는가 하면 탄소질 소행성에서는 광물이 수화(水和·hydration)됐다고 한다. 표면 아래 얼음이나 물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왜 물일까.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물을 전기 분해하면 로켓 연료와 산화제가 나온다. 가장 싼 로켓으로 우주정거장에 1ℓ 물을 나르려면 연료값으로 2000만원이 든다. 소행성에서 희토류를 캐서 물을 전기 분해해 ‘급유’한 로켓으로 운반하면 된다. 미국과 유럽의 계획은 이런 식이다. 이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면 한국은 언제 자원 빈국으로 추락할지 모른다. 유엔 평화적 우주이용위원회에서는 우주에서 자원 활용을 이미 공식 의제로 다루고 있다.”


-한국의 목표는 2022년 달 궤도선을 발사하고 2029년 소행성 아포피스를 근접 탐사하며 2030년 우리 발사체로 달에 착륙하는 것이다. 무수한 현안이 있는데도 우주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자하는 것에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보나.

“우주에 왜 가느냐고 묻는다면 과학자는 호기심으로, 공학자는 이를 기술적으로 구현해 임무 성공에 기여하기 위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로버가 화성 표면을 누비고 궤도선이 그 영상을 중계하는 건 ‘우리가 최고’라는 걸 증명하는 가장 고상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한국이 달에 로봇을 보내는 건 그만한 역량과 힘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 BTS의 활약과는 또 다른 얘기다.”

-우주 탐사는 안보 기술을 비롯해 그 나라의 과학기술이 총결집되기 때문인가.

“바이든 대통령은 퍼서비어런스 화성 착륙 후,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자들과 통화하면서 ‘여러분은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미국의 자긍심을 되돌려 줬고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줬습니다’라고 말했다. 백발의 대통령이 ‘땡큐’라는 말을 네 번 했다. 남의 나라 일이건만 가슴이 먹먹했다. 그건 자국민에게, 또 외국을 향해 ‘미국은 이런 나라거든’하고 천명하는 정치적 행위다. 퍼서비어런스가 3억㎞ 밖 화성이라는 표적에 총알 스무 배 속도로 날아가 자율항법, 유도, 자동관제(GNC 자율운영)로 착륙한다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우주 탐사에 나선 나라들은 우주 개발의 효용성과 상징적 의미를 알고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우주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한국에 필요한 건 무엇인가.

“어제 새벽까지 유엔 회원국이 참여하는 우주임무기획자문그룹에서 소행성 충돌에 대비하기 위한 온라인 회의를 했다. 참가자들은 우주국 사람들이다. 한국은 세계 7위권 진입을 말하면서 전담기관은 없다. 문제는 한국이 참여를 원하는 달 궤도 우주정거장, 게이트웨이다. 그런 거대 사업은 막대한 예산과 인력, 인프라, 기반 산업이 뒷받침돼야 하고 한 나라가 단독으로 할 수 없다. 함께하려면 철학과 비전이 맞아야 하는데 한국처럼 우주사업을 기획하면서 ‘예타’(예비타당성조사)를 하는 나라는 없다. 예타를 통과하면 예산을 몽땅 따지만 떨어지면 꽝, ‘모 아니면 도’다. 과학과 기술, 산업 생태계가 동반 성장할 틈을 주지 않는다. 정치 바람도 탄다. 한두 해 전 해외기관과 협력사업을 추진하다가 ‘적폐’로 몰려 국회를 통과하지 못 할 뻔했다. 왜 우주로 나가야 하는지, 그 철학에 합의하고 이를 이룰 수 있는 시스템과 운영방식을 국제 표준에 맞게 정립해야 한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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