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플렉스 시즌2] 멈춤 없는 51세 의족 골퍼 “내 도전이 청년에 희망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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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플렉스 시즌2] 멈춤 없는 51세 의족 골퍼 “내 도전이 청년에 희망 됐으면”

<8> 교통사고 딛고 스포츠로 ‘제2의 삶’ 한정원씨

입력 2021-04-26 03:02 수정 2021-04-2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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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원씨가 지난 6일 경기도 용인의 한 골프 연습장에서 왼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하고 스윙 훈련을 하고 있다. 용인=신석현 인턴기자

지난 6일 경기도 용인의 한 실내 골프연습장. 반바지 차림에 당당하게 의족을 드러낸 채 힘 있게 드라이버샷을 날리는 여성 골퍼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골프 스윙할 때 지렛대 삼아야 하는 왼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하고도 평균 220야드의 장타를 기록한 그는 2016년 일본 장애인 오픈대회 준우승, 2019년 호주 절단장애인대회와 세계장애인선수권대회 우승자 한정원(51·사진)씨다.


용인 기흥고 체육교사인 한씨는 8년 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었다. 교직원 연수에서 그는 동료 교사들과 건널목을 건너던 중 중앙선을 넘어 돌진한 대형 버스와 충돌했다. 돌에 부딪힌 것으로 착각한 버스 기사는 핸들을 꺾어 바닥에 누워 있던 한씨의 왼쪽 다리를 지나갔다. 무릎 아래 비골과 경골이 산산조각 났고, 동맥이 터진 다리에선 피가 폭포수같이 쏟아졌다.

아직도 사고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한씨는 “끔찍했다”고 회상했다.

“눈을 감으면 이대로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급차 안에서 정신이 혼미해질 때 함께 탑승했던 동료 보건교사가 울면서 ‘한 선생, 지금 눈감으면 이쁜 딸 다시는 못 봐. 정신 차려’라며 뺨을 때리더군요. 그 순간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사고가 있기 전까지 평온한 삶이었다. 한씨는 2남 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나 사랑받으며 성장했다. 경남대 체육교육학과 졸업 후 임용시험에 두 차례 낙방했지만 기간제 교사, 야구 기록원, 태권도 사범, 경호원으로도 활동했다.

28세에 남편 조병규씨를 만나 결혼해 두 자녀를 낳았고, 33세에 다시 도전한 임용시험에서 합격했다. 12년간 체육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던 그에게 비극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한씨에게 하나님은 환상을 보여주셨다.

“바닷가에 아이와 어른이 서 있는데 아이의 왼쪽 다리가 없었어요. 하나님께서 ‘새 신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두려워서 ‘새 신 필요 없다’고 소리치며 주사기를 뽑고 난동을 부렸습니다.”

다리는 패혈증으로 절단해야 했다. “체육 교사이니 아이들과 뛰어다닐 수 있게만 해달라”는 한씨의 부탁에 의료진은 고민 끝에 왼쪽 무릎 아래로 7㎝를 남기고 절단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저를 살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어떻게 하나님을 원망하겠습니까. 그분의 뜻을 찾고자 했습니다. 이런 기도는 해봤습니다. 도마뱀처럼 제 다리가 자라게 해달라고요.”

1년 7개월간 재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의 응원과 기도였다. 선생님이 피를 많이 흘렸다는 소식을 들은 제자들은 헌혈증을 모아왔고, 출석하는 보라비전교회(구경모 목사) 공동체는 끊임없이 그를 위해 중보기도했다.

퇴원 후 휠체어테니스에 입문한 그는 8개월 만에 전국장애인 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좌식배구 선수, 장애인 조정과 바이애슬론 종목 국가대표 상비군으로도 활동했다. 의욕이 지나쳤던 탓일까. 다리 절단 부위의 뼈가 이식한 피부를 뚫고 나와 덧나기 시작했다.

의사는 걸어 다니며 운동하는 골프를 추천했다. 한씨는 유튜브 영상으로 스윙을 배웠고, 경기 규칙은 책으로 공부했다. 스윙할 때 왼쪽 다리에 실리는 하중을 최소화하기 위해 근육량을 늘리면서 자세를 익혀나갔다.

때론 의족을 드러낸 채 골프를 하는 그를 향해 “혐오감을 준다”는 사람들의 편견과 맞서야 했지만 정작 한씨는 “골프를 하면서 장애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그는 2018년 국내 여성 아마추어 장타대회에서 비장애인들과 경쟁해 243야드로 5위를 기록했다. 장타를 앞세운 시원한 플레이로 ‘무쇠다리 로켓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한씨의 꿈은 두 가지다. 세미프로 자격을 얻어 시니어 투어(만 50세 이상)에서 비장애인 선수들과 당당히 겨루는 것과 장애인 골프가 패럴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꿈을 위해 그는 출근 전 2시간, 퇴근 후 5시간씩 매일 연습장을 찾아 훈련하고 있다.

한씨를 지도하는 진대근 코치는 “필드에서 현장 경험만 더 쌓는다면 프로는 물론 패럴림픽에 나가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51세 늦은 나이에도 어렵고 힘든 도전을 이어가는 이유는 뭘까. 한씨는 “끊임없이 도전하는 내 모습을 이 시대 청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자신에게만 찾지 마세요. 저를 일으킨 건 가족이었습니다. 열심히 발버둥 쳤는데 그곳이 비록 절벽일지라도 고난 뒤에 주실 축복을 기대하며 하나님을 신뢰하세요. 아픈 만큼 더 큰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용인=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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