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국민일보

[경제시평]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신자은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입력 2021-05-04 04:06

정책이란 사회문제의 해결 혹은 공공의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가 하는 모든 결정과 행동이다. 최적·최선의 수단을 선택하는 정책결정에서는 과학적 합리성이 필수적이다. 정책과정과 실행의 주체인 행정부 수장과 정책을 입법으로 뒷받침하는 국회가 선거를 통해 구성되고, 선거는 가치판단과 이해관계가 조율되는 정치적 과정이기 때문에 정책은 결국 과학과 정치의 교차점에서 형성된다. 과학과 정치 중 어느 한 기둥이라도 제구실을 못하면 정책은 실패한다. 과학이 압도하고 정치가 부실하면 정책은 탁상공론이고, 부실한 과학이 과도한 정치를 만나면 정책은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다.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의 정책 실패 요인을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에서 찾는 집행과학 사례연구를 통해 정부 정책이 실패하는 원인을 총 52개 과제로 추려놓았다. 그중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이 있는 몇 가지를 소개한다. 하나, 정책이 이해관계자의 합의와 수용을 얻지 못해 정책 반대 혹은 불응에 직면할 때다.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하고 성과를 내려면 집행의 파트너이자 수혜자인 국민들이 정책에 동의하고 그에 따라 선택과 행동방식이 변화돼야 한다. 정부가 하는 모든 일에서 발생하는 편익과 비용은 불균등하게 배분되기 때문에 국민들의 정책 순응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전제조건이다. 그런데 정부 신뢰도, 정부 지출 효율성, 정책 효과성, 정부 의사결정과 정책 투명성을 조사한 국제비교 자료에서 우리나라 성적은 대체로 중간 이하이고 정부 투명성 신뢰도는 최하위권이다. 가장 신뢰도가 낮은 기관은 정당, 국회, 중앙정부 순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책 실패의 위험성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둘, 정치적 목적으로 의사결정과 정책방향을 조종하는 경우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경험을 배우겠다고 유학온 개발도상국 공무원들은 자국의 정책이 실패하는 것은 리더와 권력기관이 국가발전과 공익이 아니라 자기 권력과 사리사욕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정치적 목적이 정책을 왜곡시키니 정책내용이 온전할 수 없다. 당연히 정책과정이 불투명하고 정책집행이 효과적이지 않다. 셋, 선거다. 선거는 정책 실패를 심판하는 준엄한 수단이지만 정책 실패의 씨앗이 뿌려지는 현장이다. 선거 공약은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역사와 국민 앞에 지켜야 할 약속이라는 당위성을 부여받아 과학적 합리성과 정치적 정합성을 무력화시킨다. 반복된 정책 실패의 경험은 다음 정부, 다음 정책도 신뢰하지 않는 것을 최선의 전략으로 삼게 만든다. 이 딜레마 때문에 선거가 펼쳐놓은 화려한 정책들의 성공은 선거에서의 득표수나 정권 초반의 지지율로 보장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매 선거마다 우리가 희망과 기대를 다시 품는 것은 선거가 신뢰와 정책 성공의 협력적 게임으로 판세가 역전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 선거를 앞두고 공약이 난무한다. 가격을 올리면 수요가 줄고 공급자에게 부과하는 세금은 소비자에게도 전가된다. 재정 적자는 미래세대에게 남겨지는 부채이고, 규제와 보조금 정책에는 경제적 효용의 순손실이 따른다. 감염병 정복은 백신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그리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이 아니다. 과학적 상식에 충실하고 근거에 기반하며, 투명한 절차와 참여적 소통이 갖춰진 정책, 정교한 과학과 절제된 정치 위에 굳게 선 정책이 아니라면 설 자리가 없는 선거여야 한다. 마침과 시작이 교차하는 2021년, 부실한 과학과 정치 과잉의 위험한 조합이 허용되지 않는 우리 사회,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부와 정책이 걸어야 할 바른길을 여는 원년이 되길 바란다.

신자은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