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부루마불’과 기본소득

국민일보

[경제시평] ‘부루마불’과 기본소득

안재빈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

입력 2021-07-20 04:07

기본소득제도가 양극화를 해소하는 동시에 경제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는 주장을 도통 이해할 수 없어 관련 문헌을 살펴보던 중 부루마불(블루마블) 게임을 이용해 기본소득 도입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참신한 시도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낱 실없는 비유일 수 있지만 현실 경제를 단순화해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경제학 모형의 요건들이 이 게임 속에 갖춰져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한 바퀴 돌아 출발지를 지날 때마다 지급되는 20만원의 기본소득은 생산 활동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부루마불 세계에서 원활한 경제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유용한 수단이다. 먼 훗날 인공지능(AI)이 모든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에 인간이 경제 활동을 영위하기 위해 기본소득이 필수적일 것임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 주창자들의 시도가 일견 일리 있어 보인다. 다만 이 게임에서조차 기본소득은 지속가능한 성장과 분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함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공정한 규칙을 따르더라도 주사위 운에 따라 승패가 확연히 가려지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쯤 되면 돈이 거의 바닥이 난 쪽에선 흥미를 잃고 그만두고 싶어진다. 양극화가 심화되면 경제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을 수 있음이 부루마불 게임 모형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반면에 돈을 쌓아가는 입장에선 재미있는 게임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기에 20만원의 기본소득을 100만원으로 올리자는 솔깃한 제안을 한다. 덕분에 게임은 잠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지만 한 바퀴 돌 때마다 100만원씩 지급하다 보니 정부와 중앙은행 역할을 하던 씨앗은행의 돈은 금세 바닥이 나고 만다. 높아진 기본소득을 충당할 재원이 부족해진 셈이다.

이제 둘은 게임 한 세트를 더 사와 새로운 세트의 씨앗은행 화폐를 이용하기로 의기투합한다. 순식간에 통화량은 두 배로 증가해 맘 편히 게임을 이어나갈 수 있다. 정부부채의 화폐화가 게임 속에서 실현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다시 게임이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새 세트의 건물들까지도 추가로 지을 수 있게 하기로 한다. 한 번 걸리면 100만원을 내던 통행료가 이제 200만원으로 오르게 된다. 정부부채의 화폐화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흐르면 결국 처음과 같은 상황이 데자뷔처럼 이어진다. 애초에 좋은 땅을 많이 구입하지 못했던 쪽은 다시 돈이 바닥나 버린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두 배로 늘어났던 화폐 유통량은 다른 한쪽으로 모두 쏠려 불평등이 두 배로 증가됐다는 사실이다. 게임을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기적과도 같았던 기본소득 증대 처방은 결국 일시적으로 게임을 연장했을 뿐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만다.

그렇다면 부루마불 게임을 최대한 오랫동안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을까. 이기는 쪽에 부과하는 세금 혹은 지고 있는 쪽에 지급하는 사회복지비를 대폭 올려 황금열쇠카드에 추가하는 편이 차라리 간단했을 것이다. 적어도 부루마불 속 세상은 기본소득보다는 기존의 누진세나 복지정책 확대가 지속가능한 국가경제를 위한 효과적 처방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승패가 나뉘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게임과 달리 국가경제는 지속돼야 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집권하는 동안 단기적 경기활성화 정책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게임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집권 기간에 빛이 나지 않더라도 퇴임 후에도 국가경제가 건실함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정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안재빈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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