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선교사의 노래

국민일보

[빛과 소금] 선교사의 노래

신상목 미션영상부장

입력 2021-07-24 04:02

머나먼 이국땅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잠시 귀국한 A선교사. 그는 비자 문제를 해결하고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는 등 이후 선교 활동을 위해 재충전의 시간을 보냈다. 얼마 뒤 출국을 앞둔 그에게 사뭇 긴장감과 착잡함이 느껴졌다. 선교지 상황이 절망적이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는 연일 그 나라 정치 경제 사회의 불안한 모습이 보도됐다. A선교사는 들어갈 마음이 내키지 않을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고 했다.

대부분 선교지가 그렇지만 한국 선교사들이 활동하는 지역은 어려운 곳이 많다. 아시아가 그렇고, 멀리 아프리카와 중동, 그리고 중남미 역시 이제는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과 비교하면 격차는 크게 차이 난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선교사들은 선교지를 ‘내 집’이자 고향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10년 이상 선교사로 활동한 장기 선교사들을 만나면 공통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바로 선교를 ‘사는 것’으로 정의한다는 점이다. 현지인들 속에 스며들어 살아가는 것이 선교가 아니겠냐고 말한다. 사는 것에는 때때로 희생과 고통을 수반한다. 전쟁이나 폭동을 만나기도 하고 사고와 질병으로 고난을 당한다. 자녀와 대인 관계 문제도 발생한다. 최근엔 코로나가 선교사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도 선교사들은 떠나지 않는다. 소명의식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1892년 26세 나이로 아내와 함께 조선 땅에 발을 디딘 미국의 민로아(F S 밀러) 선교사는 교육 선교에 일평생 헌신했다. 민로아 선교사는 5명의 자녀 중 넷째와 다섯째를 잃었고 이 충격으로 우울감에 빠진 아내와도 한국 도착 10년 만에 영원히 이별해야 했다.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는 민로아 선교사가 18세기 영국의 조지프 하트 목사의 찬송을 번역한 것이다. 이 번역 찬송은 1905년 출간된 ‘찬셩시’에 ‘쥬는 풍셩함’이란 제목으로 실렸다. 사람들은 시련 속에 있던 민로아 선교사에게 물었을 것이다. ‘도대체 예수가 누구이기에 당신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이오?’ 민로아 선교사는 그때 이 찬송을 불렀을 것이다. “예수님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우리 기쁨 되십니다.”

선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숱한 선교사들도 이런 노래를 부르며 살았다. 루스 터커의 ‘선교사 열전’은 현지인과 함께 살며 복음을 전한 챔피언들을 그린다. 근대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라 불렸던 영국의 윌리엄 캐리는 1793년 인도에 부임해 40년을 살아가면서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해야 했다. 인도의 더러운 환경이나 카스트제도 때문이 아니었다. 가족 문제였다. 그의 아내는 5살 난 아들이 죽자 심각한 정신병을 앓으면서 14년간 캐리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그는 벵골어, 산스크리트어, 마라티어로 성경을 번역했고 대학을 설립했다. 그의 비문은 이렇다. “이 사악하고 가난하고 정처 없는 벌레가 당신의 친절한 팔에 기대어 눕습니다.” 그가 노래한 예수는 ‘친절한 팔’이었다.

북아일랜드 출신 독신 여성 선교사로 인도의 도나부르 공동체를 세운 에이미 카마이클은 1895년부터 55년간 안식년 없이 선교사로 살았다. 그는 과부가 된 소녀들, 힌두 사원에서 매춘부 노릇을 하는 소녀들, 그리고 고아들과 함께 생활했다. 카마이클은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실족 사고 이후 20년을 병석에 있으면서도 저술 활동을 통해 아이들을 돕는 일을 호소했다. 카마이클이 남긴 기도문은 많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회자된다. “모든 고통을 겪으신 주님, 저에게 허락하신 고통이 괴롭습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왜’라고 묻기보다는 ‘무슨 목적으로’를 묻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고통이 사라지기 전에 노래하는 것을 가르치소서.”

세계 기독교의 팽창은 이런 선교사들의 삶에 기초한다. 그들은 역경을 보란 듯 극복한 영적 거인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서 기꺼이 하나님께 쓰임 받고자 했을 뿐이다. A선교사 역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신상목 미션영상부장 smshin@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