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누구에게 먼저 가실까… 목마르고 굶주린 자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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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누구에게 먼저 가실까… 목마르고 굶주린 자일 것

휴대용 정수 물통 개발 김장생 교수,
빈곤 문제와 마주한 15년

입력 2021-07-23 17:53 수정 2021-07-2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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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김장생 연세대 교수. 김 교수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겐 물고기를 주고, 물고기 잡는 법도 가르쳐줘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가난을 극복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심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김장생(47) 연세대 원주캠퍼스 인문예술대 교수가 휴대용 정수 물통 사업에 뛰어든 스토리를 설명하려면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그는 ‘국제 빈곤의 이해’라는 수업을 맡고 있었는데, 수업을 듣던 산업디자인학과 학생이 김 교수를 찾아왔다.

“교수님,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이 학생이 내놓은 아이디어가 휴대용 정수 물통이었다. 학생은 후진국 사람들을 온갖 수인성 질병의 수렁에서 건져내고 싶다고 했다. 김 교수는 물통의 ‘성공’에 필요한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일회용이거나, 계속 필터를 구입해 갈아 끼워야 하는 제품이라면 쓸모가 없을 거야. 그들에겐 돈이 없으니까. 성능도 뛰어나야 해. 웬만한 세균은 모두 없애는 정수 시스템을 갖춰야 할 거야. 이런 조건을 못 갖추면 물통은 실패할 수밖에 없어.”

두 사람은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해 사회적기업 탭(tAB)을 설립해 휴대용 정수 물통인 ‘라디스 보틀’(사진)을 만들었다. 라디스 보틀은 마개에 부착된 자외선램프로 각종 세균을 박멸하는 물통이다. 충전은 태양광으로 하면 된다. 라디스 보틀은 지난해 한 대기업이 벌인 스타트업 제품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tAB은 상금으로 라오스와 필리핀 시골 마을에 각각 물통 1000대씩을 선물했다.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교수는 “지난해 9월 라오스에 라디스 보틀을 보내고 올해 1월까지 각종 조사를 벌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통이 거둔 성과를 하나씩 소개했다. “라디스 보틀을 사용한 주민들의 경우 복통을 호소하는 기간(한 달 기준)이 6일에서 1일로 줄었다.” “행복감을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30%에서 42%로 증가했다.” “이전보다 건강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되면서 주당 노동시간이 30분 늘었다.”

국내에서도 라디스 보틀은 온라인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물통 4, 5대가 팔리면 1대가 빈국에 기부되는 구조”라며 “미국이나 유럽 수출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의 이런 활동이 관심을 끄는 건, 휴대용 정수 물통 사업이 지난 15년간 그가 벌인 일들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의 이력부터 살펴보자. 김 교수의 조부는 강원도 원주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자인 고(故) 김용기 장로다. 검약과 공동체 정신을 가르치는 이 학교는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가나안농군학교 관사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 감리교신학대에 진학해 종교철학을 전공했고, 대학 졸업 이후엔 독일 프랑크푸르트대로 가서 종교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때만 하더라도 그의 인생행로는 정해진 듯했다. 신학자의 길을 걸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6년 귀국 직후 아버지인 김범일 가나안농군학교 교장과 아프리카를 방문하면서 김 교수의 꿈은 바뀌었다. 국제 구호와 후진국 개발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2014년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하며 몰두한 과제가 인간의 고통이었는데, 아프리카 방문을 통해 빈곤이 고통의 시작임을 절감했다”고 말한 바 있다.

김 교수는 가나안세계지도자교육원 부원장으로 일하면서 가나안농군학교의 정신을 아프리카에 퍼뜨렸다. 교육원은 가난한 나라 청년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1~3개월간 각종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다. 참가자들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구보를 하고 근면과 검약 정신을 배운다. 고국으로 돌아갈 때 이들의 이름 앞엔 ‘개척자’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지금까지 배출한 개척자는 80개국 920명에 달한다. 김 교수는 그동안 개척자들이 변화시킨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혹은 아프리카에서 진행 중인 각종 구호 사업을 살피기 위해 틈틈이 아프리카를 찾았다. 7년 전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까지 아프리카 방문 횟수가 36번이나 된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현재 그 횟수는 얼마나 늘었을까.

“90번 이후로는 세지 않았어요. 90번을 넘은 게 2, 3년 전이었으니 아마 100번 넘게 아프리카를 찾았을 겁니다. 코로나19 탓에 지난해 초부터 아프리카에 가지 못하고 있는데 최근 백신 접종을 한 덕분에 아프리카로 갈 수 있게 됐어요. 조만간 가나로 출국할 예정입니다. 가나 정부에서 국립대학을 설립하는데, 이 학교 커리큘럼을 설계하고 교직원들을 교육하는 일을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너무 설렙니다. 저에게 아프리카는 고향 같은 곳이에요. 한동안 아프리카에 갈 수 없어서 진한 향수를 느끼며 살아야 했어요.”

지난 15년간 김 교수는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는 “젊을 때는 뭔가를 이루는 ‘주인공의 삶’을 살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며 “빈곤 문제 해결에 뛰어드는 사람을 돕는 조연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예수님이 다시 우리에게 온다면, 과연 어디부터 찾으실까 자문하곤 합니다. 정답은 뻔하더군요. 아마도 예수님은 마실 물이 없어서 한참을 걸어가 흙탕물을 길어오는 아이들에게, 식량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갈 거예요.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이런 마음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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