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뒷전, 늘 주님 위해 봉사하는 ‘이름없는 헌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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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뒷전, 늘 주님 위해 봉사하는 ‘이름없는 헌신자들’

기도로 영적위기를 돌파하라 <8>

입력 2021-07-2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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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훈 서울 화양감리교회 목사가 2006년 미국 알래스카예광감리교회 성전이전 감사예배에서 미국인 교인에게 감사패를 증정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 알래스카에 교회를 개척한 지 2년 정도 됐을 때다. 드디어 창고교회에서 상가교회로 이전했다. 한인 숫자가 극히 적은 알래스카에서 80여명 모이는 교회로 부흥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특별히 이름 없는 헌신자들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까지 알래스카 선교 때 잊을 수 없는 두 분이 계신다. 앵커리지주립대학교에서 모임을 가진 지 3년 정도 됐을 때다. 70여명의 청년이 모일 때다. 시골 같은 지역에 한인이 이렇게 많이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미주 한인 방송국에서 인터뷰하러 왔다. 기자는 “청년을 찾아보기 힘든 지역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청년이 모일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래서 옆에 계신 이정호 권사님을 소개하면서 “이 권사님이 많은 역할을 감당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에 알래스카주립대에서 새벽 예배를 드릴 때 예배 후 권사님이 청년들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했다. 자영업을 하시는 권사님인데 정말 쉽지 않은 헌신이었다.

“권사님이 도움을 많이 주셨기 때문에 마중물이 돼 앵커리지주립대에 있는 학생이 모이는 성령 충만한 모임이 된 것입니다. 권사님이 겸손하게 참 많은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기자가 권사님에게 질문했다. “권사님이 주립대 청년 모임과 알래스카예광감리교회 부흥에 큰 역할을 하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헌신하셨나요.”

그때 권사님의 말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기자님, 오해하셨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이끄는 교회와 청년 모임의 역사 가운데 걸림돌이 될까봐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한 것밖에 없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공로가 드러나는 순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라고 얘기했다. 이처럼 권사님도 본인은 철저히 무대 밑으로 내려오고 하나님을 올려드린 것이었다. 그날 이후 성도의 자세를 강조할 때 권사님의 말씀을 다시 되새긴다.

또 다른 분은 유희인 권사님이다. 이 분의 별명은 빈대떡 권사님이다. 유 권사님은 우리 부부와 항상 심방을 다녔다. 그런데 심방할 때면 꼭 사비를 털어 맛있는 빈대떡을 부쳐 왔다. 하루 이틀도 아닌데 한 번도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았다. 심방 전도사님처럼 7년을 봉사하신 분이었다.

그때 나는 유 권사님보다 훨씬 젊었다. 내가 운전을 직접 해도 되는데 권사님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사님은 영적 권위를 지닌 담임목사님이시기 때문에 뒤에 타셔야 합니다. 운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그렇게 한 번도 운전대를 주신 적이 없다. 그래서 늘 마음이 죄송했다.

그런데 어느 날 권사님이 팔 전체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급히 병원에 문병을 갔다. 팔 전체에 화상을 입긴 했지만 6개월 정도 잘 치료하면 팔을 사용하는 데 큰 문제 없이 회복될 수 있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참 감사했다.

“권사님,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많이 다치셨어요.” “아휴, 괜찮아요. 집에서 국 냄비를 옮기다가 그런 거예요. 금방 나을 거예요.” 그래서 빨리 완쾌되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3개월쯤 지나서 화상을 입게 된 진짜 이유를 의사를 통해 듣게 됐다. 권사님이 팔 전체에 화상을 입은 이유가 교회에서 토요일에 식사준비를 하시다가 다쳤다는 것이었다. 그날따라 휴가철이라 젊은 여성들이 교회에 없었다고 했다. 토요일 아무도 없자 교인들의 식사를 혼자 준비하다가 그만 큰 국그릇이 엎어졌다. 뜨거운 국물이 팔에 다 쏟아진 것이다.

국물은 어깨와 팔로 흘러내렸다. 권사님은 살까지 다 벗겨지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은 화상을 입었다. 다행히 빨리 병원에 가서 조치했다. 정말 큰일을 겪을 뻔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다른 교인을 원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게 무슨 고생이야. 젊은 사람들이 봉사도 안 하고 놀러 가서 나 같은 70세 노인이 봉사하다가 다친 거잖아.’ 그렇게 원망할 수도 있었는데 권사님은 교회에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냥 집에서 일하다가 다쳤다고 둘러댔다.

“아니, 권사님. 교회에서 일하다가 다쳤다고 왜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그랬더니 하는 말씀이 대단했다. “교회에서 일하다가 다쳤다고 하면 말도 많을 것 같고 은혜도 안 되잖아요.”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권사님의 겸손하고 희생적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을 위해 한결같이 봉사하는 그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분들과 함께 목회를 할 수 있었을까. 기도가 있었기에 정말 필요한 동역자를 붙여주신 것이라 믿는다. 이처럼 훌륭한 동역자가 있었기에 알래스카 땅에 첫 번째 한국감리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청년 부흥의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최상훈 목사(서울 화양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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