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부동산 무정부 상태

국민일보

[가리사니] 부동산 무정부 상태

이종선 경제부 기자

입력 2021-07-26 04:03

“차라리 정부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현 정부 들어 정부가 내놓은 반(反)시장적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드러날 때마다 부동산 전문가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던 말이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이 정말 현실이 된 것 같다. 올해 상반기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지난해 1년 치 상승분보다도 더 올랐다는 통계 자료가 발표되고, 주택시장 비수기인 7월 들어서도 집값이 전혀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정부나 국회나 전혀 위급한 기색이 안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관련 발언 이후 공식 석상에서 한 번도 부동산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정부 역시 2·4 대책 이후 이렇다 할 대책 대신 “2·4 대책 후속 공급 작업에 주력하겠다”는 메시지만 도돌이표처럼 내고 있다. 정부가 회의를 열고 대책을 발표한다고 집값이 잡히지는 않았던 게 현실이지만, 그나마 뭐라도 해보겠다는 시늉조차 안 하는 모습은 낯설다.

방심한 사이 방역의 빈틈을 파고든 코로나19 4차 대유행 대응에 여력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어차피 현 정부 임기가 열 달도 채 안 남았으니 섣불리 움직였다가 벌집을 쑤시는 일 만들지는 말자는 심산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부동산 시장 상황에 대해 관리 책임이 있는 건 어쨌거나 정부 아닌가. 그런데 정부가 그나마 뜨문뜨문 회의를 열어 발표하는 내용은 “집값이 고점에 근접했다”(지난 6월 3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발언) “임대차법 개정을 계기로 임차인의 주거 안정이 크게 높아졌다”(지난 21일 홍 부총리 발언) 같은 발언뿐이다. 집을 사려는 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벌이거나 아예 속된 말로 ‘정신승리’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읽힌다.

최근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등 부동산 관계 부처에서 한국은행의 연내 기준금리 인상 공식화에 일말의 희망을 거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부동산을 사는 대다수 국민이 대출을 끼고 사는 만큼 금리가 오르면 부동산 시장 투자 수요가 줄어 시장 안정화에 접어들지 않겠냐는 얘기다. 이론적으로야 맞는 얘기지만, 과거 금리를 올렸는데도 집값이 계속 올랐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도 모를 리 없다. 1년 전만 해도 집값 상승 원인을 넘치는 유동성으로 꼽으며 사실상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탓으로 돌리던 정부가 이제 한은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도 처량하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렸는데도 집값이 안정화되지 않으면 그땐 어떻게 할 건가.

정부의 섣부른 조치로 부동산 시장 상황을 악화시켰던 게 한두 번이 아니기에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다는 말에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부동산 무정부 상태’를 계속 이어가는 게 과연 책임 있는 정부와 집권 세력의 자세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대다수는 현 정부보다는 내년에 들어설 다음 정부에 촉각을 기울이는 분위기지만, 당장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에 새로 전셋집을 알아봐야 하는 사람들, 결혼을 준비하는 청년 등 실수요자에게는 남은 열 달조차 중요한 시간이다.

새로운 정책을 내기에 시간이 부족하고 뾰족한 답이 안 보인다면 차라리 지금껏 해왔던 것에 대한 ‘백서’라도 정부와 여당이 힘을 합쳐 만드는 걸 제안해보고 싶다. 현 정부 들어 26번의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과 임대차법 개정 등 시장 파급효과가 컸던 정책에 대해 자화자찬으로 얼룩진 평가 대신 직접 국민과 전문가 의견을 듣고 개선점을 찾아가자는 얘기다. 차를 몰고 가다가 이 방향이 아닌 것 같다 느껴진다면 그저 갓길에 세워놓고 기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유턴을 하든, 우회전을 하든 방향을 틀어야 하지 않을까.

안타까운 건 다음 대통령을 하겠다는 여권의 일부 유력 주자들이 세금, 토지 소유 제한 등 현 정부가 해온 정책의 ‘시즌 2’를 부동산 공약으로 내고 있다는 점이다. 벌써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데 그들에게 백서 같은 게 눈에 들어올 리가 있을까 싶다.

이종선 경제부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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